7월 23일 - 삶과 지식의 경계 영화 <세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도서관씬 이었다. 섬머셋 경감(모건 프리먼)이 밤늦게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도서관 경비들은 모여 앉아 노닥거리며 즐겁게 포커를 치고 있었다. 섬머셋 경감은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러분. 여러분! 이해가 안 되는군요.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는 지식의 세계에 둘러싸여 뭐하고 있는 겁니까? 밤새도록 카드만 치다니...” 그러자 경비들은 키득거리며 이렇게 대꾸한다. 경비1 : “이게 우리의 문화에요.” 경비2 : “나름대로의 문화생활이죠.” 다함께 (하하하하하) 그리고 경비 3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디오 플레이버튼을 누르며 섬머셋 경감에게 말한다. 경비3: “이 문화는 어떤가요?” 경비 3이 섬머셋 경감을 위해 들려준 음악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FL9bylhDkcc 영화 <세븐>에서 평화로운 장면은 도서관씬이 유일하다. 섬머셋의 고요한 방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밀즈의 집에서 함께 나누는 저녁식사 장면은 전철이 자나가며 집이 흔들리는 순간 불안해진다. 도서관의 경비들, 도서관 안의 수많은 책들과 지식의 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고, 세상 밖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사건에도 무심할 것 같은 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인범을 쫒는 섬머셋은 가장 편안하게 한 숨을 돌리며 세권을 책을 찾아낸다. 초오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단테의 신곡 알리시아의 지상의 낙원 (사족을 쫌 달자면, 지상의 낙원은 육둘러들의 필독서이자 육체와 정신의 사랑에 관한 합일점을 찾지 못한 'Young Adult'들을 위한 교과서. 강력하게 추천한다. 지상의 낙원은 멀리 있지 않느니라. ㅋㅋㅋㅋㅋㅋㅋ) 이 세권의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켜주고, 관념의 깊이를 더해준 명저 임과 동시에 해석에 따라 악의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말만 이렇지 캔터베리 이야기는 인용문으로 간간히 접했을 뿐 읽어보지는 않았다. 쩝 ㅋㅋ) 무튼, 영화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명확하다.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의 세계’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 도서관 장면을 보여주며 ‘환기’(Aria)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관념이든, 논리든, 철학이든 긍정적인 역할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일기에 등장한 남자는 전경린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는다며 전경린의 모든 소설을 신주단지처럼 모신다고....;;; 내가 다 미안해요. 전선생님...;;;;) 오늘 만난 사람들은 도서관 경비들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의 이념들을 뒤로하고 유쾌하고 맑은 자신들의 문화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오늘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오전 8시 무렵이 되자 비가 그치고 날이 개는 것처럼 보였다. 마니산 정상부근에는 여전히 짙은 구름이 걸려있었지만 산이라도 올라야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 아침을 먹고 곧장 산으로 향했다. 마니산은 바위로 이루어져 다소 험해 보이지만 등반 구간이 길지 않은 낮은 산이어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정상에 올라섰을 때 10여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쉬고 있었는데 즐거움과 편안함이 웃음 한 번, 말 한마디에도 묻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은 커피를 권하고, 또 한 사람은 시원한 물을 권하고, 소주를 따라주고, 복숭아 한 알을 손에 쥐어주며, 나누는 즐거움에서 찾아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천에서 버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오늘과 내일 양일간 휴무일이어서 부부동반으로 산행을 왔다고 했다. 40대 후반에서부터 50대 후반에 이르는 중년의 부부들이었는데 낯빛에 고단함이 묻어있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것이 의아해 보일 만큼 오늘의 소풍과 그들의 삶을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하산을 하는 길이었고 나는 참성단을 향하는 길이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헤어지는데 등산로 입구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테니 참성단을 둘러보고 하산하는 길에 자신들이 보이면 찾아오라고 일렀다. 잔치??? ㅎㅎㅎㅎ 자고로 잔칫상에는 거렁뱅이가 빠지지 않는 법. ㅋㅋㅋ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하산하는 길에 찾겠다고 말하고 참성단으로 향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 능선을 따라 1km 정도 걸었더니 참성단에 이르렀다. 심한 안개로 가시거리가 20m도 되지 않아 먹먹한 안개 속만 바라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산 능선을 넘어가고더니 광활한 갯벌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러더니 순식간에  이렇게 으아~~~ 그 풍경을 본 적 없는 나는 안개 넘어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터라 갑작스럽게 펼쳐진 풍광 앞에서 넋을 잃고 앉아 오랫동안,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낚시 했던 곳, 남자를 만났던 곳, 더위에 시달리며 잠들었던 숲, 복숭아를 땄던 빈집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풍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동해에 갈 때는 두타산에 올라 희미한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들떴다면, 강화도에서는 며칠간 궁상을 떨고 난 뒤 산에 올라 지나온 길을 지긋이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산에 올라 지나온 길을 바라볼 때는 조금 슬퍼지기도 했지만 여행을 마무리할 무렵이 되어 산에 올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 미리 산에 올라 앞으로의 시간을 관망하는 것 보다 더욱 의미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소년등과(少年登科)를 경계한 것인가?^^ 한 시간도 넘게 너럭바위에 우두커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다 산을 내려가서일까. 잔치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잔칫상에 거렁뱅이 배 하나 채워줄 만한 음식이 떨어질 리는 없을 것이다. 서로가 싸온 이런 저런 반찬과 고기, 과일, 야채와 술을 권하며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에는 어떤 가식도, 부끄러움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상사 사연 없는 사람 없을 테지만 길바닥에서 발품 파는 운전기사들 사연만 할까. 그러나 그 사연 다 뒤로하고 누군가는 노래하고, 누군가는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여러 사람들은 그 노래와 춤에 박수보내며 웃고 즐거워했다. 남은 음식 남에게 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새 음식을 찾아 먹이고, 타인의 여행이 무탈하기를 진심으로 빌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즐거운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웃을 줄 아는 태도는 많이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많이 배웠다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자 왈 맹자 왈 하지 않아도 땅에 발을 데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란 말은 몰라도 자연히 그 뜻은 알아지기 마련인데, 그 무한한 지식의 숲을 떠돌며 무지렁이들도 아는 사단(四端)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가 날로 늘어간다. 상아탑은 땅에서부터 너무 높이 솟아올라 하늘에 닿은 모양이다. 이렇게 유쾌하고 거짓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외가 사람들이 생각난다. 평민 집안에서 농사만 지으며 대를 이어온 외가 사람들은 서책을 놓고 배운 것은 없어도 땅과 바다가 알려주는 것으로 사람의 도리를 깨우쳤다. 언제나 근면하고 성실한데다 울안에 가족이 모이면 다투는 일 한 번 없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큰 소리로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생기면 서로를 보듬어가며 함께 눈물 흘렸다. 자기 자신을 감추지 않고, 형제자매들의 자식들을 제 자식처럼 여겼기에 외가에 가면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편안하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란 이러하다고 믿는다. 오늘은 꽃 대신에 웈낀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 찾는 책이 있어 서점에 갔는데 진열대에 이라고 책이 진열되어 있어서 한참을 킥킥대고 웃었다능. 두 권의 책 제목이 말풍선 같지 않어? 한 컷짜리 만화를 보는 듯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