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 장맛비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소금기 가득 품은 눅눅한 바닷바람이 공기 중에 넘실거린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어제 저녁에 작별인사를 드렸다. “비가 많이 온다니 비를 피할 만 한 곳을 찾아가야겠어요.” 대진항에서도 비를 피할 수 있었을 테지만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도 할머니는 내가 있겠다고 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내 밥을 챙겨주려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얻어먹고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내 스스로 면목이 서지 않았다. 새벽에 빗방울이 굵게 쏟아졌지만 짐을 정리하고 항구를 떠나 옥계저수지로 향했다. 습하고 눅눅한 바닷바람을 피할만한 곳을 찾아 이동하던 중 옥계저수지가 눈에 띄어 찾아 들어간 것이었다. 비가 거세게 쏟아져 차에 앉아 몇 시간동안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차 안에서는 심한 비린내가 났다. 잡아서 말려 두었던 황어가 비를 맞아 축축해졌고 차 안에서 지독한 비린내를 풍겼지만 말릴 방법이 없었다. 항구를 떠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황어는 끈적하게 상하기 시작해 황어를 버리고 소쿠리와 건조망을 저수지 물에 씻어냈다. 썩어가는 비린내는 차 안으로 묵직하게 퍼져나가 나를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황어뿐만이 아니었다. ‘너다!’님의 댓글을 읽고 확인해 본 돼지기름은 심하게 상해있었다. 돼지기름은 눅지근한 기름 냄새 수준을 벗어나 시궁창냄새에 가까운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 모두 버렸다. 혹시나 싶어 젓갈은 웃소금을 더 뿌려두었다. 장마가 지나기 전까진 그날 먹을 것은 그날 채취해 먹어야겠다. 물고기를 많이 잡아도 말릴 방법이 없고, 야채를 많이 구해도 신선하게 보관할 방법도 없다. 정오 무렵에 비가 그쳐 옥계저수지 아래 위치한 한울타리 영화마을에 다녀왔다. 폐교를 개조해 영화를 테마로 조성한 캠핑장이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이용객도 관리인도 눈에 띄지 않고 삽살개 두 마리만 넓은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나무에 열려있는 앵두를 따먹고 살구 몇 알을 따서 가방에 담고 차로 돌아왔다.  저수지 주변엔 숲이 있고 물도 흘렀지만 비가 쏟아져 숲으로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를 옮겨 정동진 바로 옆 동명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도 없고 한적한데다 화장실이 잘 만들어져있어 밤중에 샤워 한 번 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두 사람 보기에 참 예뻤더란...그래서 맬로영화 생각이 났나보다. 요 며칠 무언가에 쫒기 듯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알고나 먹자 출간이 가까워서 가편집본을 정리하고, 감독론을 쓰고, 먹을 것을 구하고, 일기를 쓰고, 낯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는데 오늘 오전에야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편안하게 장맛비를 맞이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밥도 먹지 않기로 했다. 따온 살구나 하나씩 깨물어 먹고 이런저런 차를 끓여 마시는 걸로 끼니를 대신하고 모레 아침부터 밥을 구해 먹어야겠다. 이틀 굶어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 그동안 많이도 먹은 것 같다. 그렇게 굶어야 늘어난 위도 줄어들고 붕 뜬 마음도 가라앉을 것만 같다. 주춤하던 비가 저녁이 되면서 다시 내리기 시작해 주룩주룩 장맛비답게 쏟아진다. 이런 날은 발가락 움켜쥐게 만드는 공포영화도 좋겠지만 말랑말랑한 멜로영화가 그만이다. 오늘밤은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최근작 <허(her)>. 얼굴도 예쁘지만 목소리가 쎄끈 발끈한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로만 출연한다고. 목소리만 들어도 쌀만하지... ㅎㅎㅎ 울타리콩 굵은 빗방울 쏟아지는 어두컴컴한 아침에 길을 가는데 울타리콩이 환하게 꽃을 피워 차를 세웠다. 빗방울이 너무 굵어 차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울콩꽃이 이렇게 예뻐보인 날도 드물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더니 그새 축축하게 옷이 젖고 말았다.  흠뻑 비에 젖었어도 알록달록 울콩꽃이 일기장에도 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