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 통리 고한생활체육공원은 하루를 머물고 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수도 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데다, 아니 글쎄! 그렇게 한적한 공원에 연애질 하러 오는 남녀가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임!! 미안하지 않으면 최적인거임. 쩝 ㅋㅋ 편안히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반드시 봐야만 하는 경기.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경기는 술이 개떡이 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봐야만 하는 경기였다. 초장부터 결승전 리매치라니!! 개인적인 취향으로 로번을 좋아한다. 쫌 어리숙하고 빈틈이 있어 보이는데도 날카로워야 내 취향이다. 내 보기에 로번 만큼 어리버리하게 생긴 축구 선수도 없다. 뛰는 것 봐라. 얼마나 어리버리 한지.ㅋㅋㅋㅋㅋ 물론 메시와 루니도 좋아하지만.... 루니 씨발롬. 머리를 왜 심어!! 응? 무튼, 나는 경기의 승패 보다는 이렇게 어리버리 하게 생긴 놈들이 기라성 같은 놈들을 비집고 들어가 골을 넣는 장면에서 꼴릿해지기 때문에 축구를 본다. 물론 판 페르시 같은 능력있고 잘나 보이는 쉥퀴(아니, 씨붱. 리그에서도 그렇게 잘 할 것이지.....)가 두 골을 넣었지만 우리의 어리버리 로번도 두 꼴을 넣지 않았던가. ㅋㅋㅋㅋ 지은 밥을 곰취에 싸 먹으며 축구를 봤다. 4년 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월드컵이라지만 이런 삐꾸 같이 생긴 로번, 메시, 루니가 한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밥은 꼴딱꼴딱 잘 넘어가고 어리버리 로번은 꼴딱꼴딱 잘도 넣는다. 축구가 끝났는데도 축구장에 나타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 다들 축빠들이라 밤새 축구를 보고 잠이 들었거나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장은 공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쩝.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오랜만에 비누칠을 해가며 샤워를 했다. 이곳은 강원도 태백. 해발 고도가 기본적으로 4,500미터가 넘다보니 밤새도록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잠을 잤지만, 이렇게 비누칠을 해가며 편안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므로 추워도 옷을 벗고 목욕을 했다. 월드컵이 이만저만 즐거운 것이 아니다. ㅎㅎㅎ쩝;;  주변에 식수대도 있어 그 곳에서 설거지도 하고 식수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되었다 싶을 무렵 함백산으로 향했다. 함백산은 아라리고개를 넘는 함백산 정상 부근까지 차도가 나 있고, 그 고개를 넘으면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산이 자리하고 있어서 뭐 먹을 것 없나 찾아가 보았지만.... 없었다.;;; 이런저런 나물들은 간간히 눈에 띄었지만 높은 풀이 우거지고 먹을 만 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것이었다. 어둡고 음습한 숲은 적응 하고 살아갈 만한 식물이 별로 없어서 숲이 차분했다면, 양지의 숲은 온갖 식물들이 좋아 죽는 자리가 분명했다. 온갖 잡초들이 한데 뒤 엉켜 자라나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하기도 힘들었고, 발길을 옮기기도 힘들 만큼 높이 자라나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로 넘어갈 때까지 잡목숲을 돌아다녔더니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고, 먹을 만한 것을 찾기도 힘들었다. 더덕 한 뿌리, 참마 한 뿌리를 찾은 것이 4시간 등산을 한 최선을 결과였다. 어쩌면 스페인 월드컵 대표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도 같았다. '씨바. 어떻게 해도 안되는구나....;;‘ 차에 널부러져 둥굴레차 몇 잔을 연거푸 마시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기운을 차리고 우선 태백 시내로 내려가기로 했다. PC방에 들러 데이터를 전송해야 할 일도 있었고, 신발도 수선해야 했으며,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통리역에도 가봐야 했다. 태백으로 내려와 PC방에 들러 촬영해 두었던 영상을 전송하고, 구두 수선집을 찾았다. 오늘 산에 다녀오면서 신발은 더욱 못쓰게 뜯어져서 수선을 하지 않으면 영영 못 쓰게 되어 버릴 것 만 같아 보였다. 다행이 태백에는 구두 수선집이 있어서 신발을 꾀맬 수 있었다. 구두방 옆에 황지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지연못.  태백의 마로니에 공원같아 보였달지... 신발을 수선했지만 밑창이 닳아 자주 미끄러지기도 했는데, 오늘은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시에 왔을 때 신발을 새로 사 선어야 안전할 것 같아 등산화 하나를 새로 사고 통리로 향했다. 통리는 스물네 살에 노가다를 하러 찾아왔던 곳이었다. 통리에서 도계로 연결되는 38번 국도를 포장하는 공사를 했었는데, 12월 한 겨울에 길 가에서 돌을 지어 나르고 쌓는 일을 했었다. 일명 ‘가베’라는 일이었는데, 한겨울에 하기에는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일당이 좋아 경기도 광주에서부터 흘러흘러 통리까지 왔었던 것이었다. 그 때 당시 묵었던 통리역 앞 숙소와, 저녁이면 모여앉아 술을 마셨던 술집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2012년부터 통리역은 폐역이 되고 그 인근 상점들도 함께 문을 닫게 된 것이었다고, 아직도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신 아주머니는 이야기 해 주었다. 그 때가 12월 31일 이었을 것이다. 12월 31일 까지 눈이 오지 않아 일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그 해의 마지막 날 밤 폭설이 쏟아졌고, 그 새벽에 우리는 지하 여관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지하방이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망년회를 거창하게 치러 술에 떡이 되어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늦은 아침에 눈을 떠 어찌된 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더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도 없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깨우고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노가다 씹장과 과장이라 불렸던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이었다.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았다. 강원도 정선을 고향으로 둔 노가다꾼은 ‘허헛’웃으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원도는 눈 오면 노가다는 끝이요. 그거 알고는 돈 들고 튄거라. 그만 전화하고 짐들 싸서 고향으로 돌아들 가시오. 돈 받긴 글렀소." 눈이 오면 제설작업이 이뤄질 때까지 모든 발이 묶이게 되고, 모든 노가다는 ‘데마찌’가 나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 틈을 타 씹장과 과장은 인부들의 일당을 챙겨 사라진 것이었다. 1월 1일 새벽, 노가다 씹장과 과장은 열 명이 꼬박 한 달을 일한 돈을 들고 눈길을 피해 사라져버렸다. 정선사람의 말처럼 눈은 끝없이 내려 어지간한 차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짚차를 얻어타고 도계역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랬다. 돈 받을 생각 말라고. 그 사람들이 어디로 톡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태백산일지, 설악산일지. 오대산일지 모른다고. 손에는 겨우 10만원이 들려 있었고, 그 돈으로 기차타고 버스타고 전주로 내려왔더니 남은 돈은 없었다. 아마도 내 기억에 가장 추웠던 겨울이지 않았을까 싶다. 집이 너무 추워 더러운 노가다 판으로 다시 일을 하러 떠났었으니까. 그 통리에 왜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문 닫은 역과 문 닫은 여관과 문 닫은 술집을 보자 부쩍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그 추운 날 길바닥에서 일하고, 돈 띠고, 어쨋거나 살아남아 다시 왔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니.  이제와 분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지만 그 기억이 탄광역과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지난 시간 하나를 또 지워야겠다.  그 때 쌓았던 돌담은 길가에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 보니 뜨악하다.  그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