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꿈같어? : Dumb, Drunk and Racist 4편, "가만 있는" 아보리지니 케빈 마이클 러드, Kevin Michael Rudd.  그는 호주 중도좌파인 노동당의 총수이며 2007년 12월 3일부터 2010년 6월 24일까지 호주 제 26대 총리로 재임하였다.  레전드라 불리던 전임 총리, "존 하워드"가 7년간 재임하던 시절에도 여론조사에서 선호하는 총리 1위를 내주지 않았을 정도로 인기인이었던 케빈 러드는  존 하워드가 당시 미국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를 비난한 연설을 되려 신나게 반박해버림으로써 전세계의 이목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어렸을때부터 수재로 인정받은 그는 호주 국립대학교(ANU : 세계 대학랭킹 48위, 서울대는 44위)의 중어중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간의 외교는 그의 총리 재임시절에 가장 적극적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통이라 불리는 그는 심지어 그의 세 자녀 모두 중국어에 매우 능하다. 업적으로는 전임 정부가 강경하게 압박하여 전 국민적 원성을 산 "근로기준 개정법"(노동자 근로기준, 권리주장, 해고기준 등의 혜택을 축소)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이라크 파병 호주군 1500명의 3단계 철수,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토 의정서 비준의 적극적 추진(호주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기후적 피해를 가장 먼저 보는 나라다),  초고속통신망 구축 추진 및 정계 내외로 불필요한 규제와 지출을 과감히 배제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하였으나 일부 정책에 대해 미지근한 "미투 정책"(전임자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가는)을 펼치기도 했고 특히 우라늄 수출 문제로 호주 녹색당의 큰 반발을 샀다. 역대 호주 총리들 중에서도 최고수준급의 연설 스킬을 가진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National Apology to Stolen Generations 2008년 2월 13일, 당시 호주 총리였던 케빈 러드는 "강탈당한 세대에 대한 사과"(National Apology to Stolen Generations)를 했다.  그날 호주 정부는 케빈 러드를 통해, 호주인들은 호주 대륙을 침략하여 원주민을 탄압한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캔버라 국회 의사당 앞 뿐만 아니라 전국의 큰 광장에 설치된 대형 TV 앞에는 수많은 호주인들과 호주 원주민들이 모여서 호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열렬히 환영했다.  호주인들과 원주민이 한 곳에 어우러져 울고 웃으며 감격했고, 원주민들은 전통 복장으로 노래하고 향불을 피운 연기로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을 축복했다.  220년 호주 역사에서 총리의 공식 사과는 처음이었으며, 이 사과로 인하여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자연 문화제"라며 멸종 위기의 금수 취급을 받던 호주의 원주민들은 정식으로 호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호주의 화합을 이끈 이 공식사과는 케빈 러드의 가장 위대한 업적들 중 하나라 칭송받고 있다. 오늘은 "Dumb, Drunk and Racist" 그 네번째 이야기로, 호주 토착민인 "애버리진"에 대한 이야기이다. 호주 원주민 흔히 호주 원주민( Indigenous)  하면 "애버리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호주에는 세 종류의 원주민이 있다. "애버리진"으로 잘 알려진, "아보리지니" (Aborigine) 이고, 또 하나는 "토레스 스트레이트 아일랜더"(Torres Strait Islander), 그리고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Tasmanian Aborigine)이다. 우리가 보기엔 다 같아 보일진 몰라도 막상 본인들이 들으면 기분나빠 할지도 모른다. 아마 토레스 스트레이트 아일랜더에 대해선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토레스 스트레이트는 호주와 파푸아 뉴 기니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토레스 해협에는 무려 27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데, "Bamaga"와 "Seisia"를 기점으로 하여 분포하던 원주민을 말한다. 전투형의 몸매는 다소 마른 체격의 아보리지니들과 한 눈에도 차이가 난다. 순전히 필자만 만끽하는 작성의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호주 원주민 모두 "아보리지니"로 통칭하도록 한다. < 왼쪽이 "아보리지니", 오른쪽이 "토레스 스트레이트 아일랜더"의 깃발이다. > < "토레스 스트레이트 아일랜더"들의 전통의상인 머리깃은 왠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연관성을 불러 일으켜 준다. > < 곱슬머리에 작은 체구를 지닌 "아보리지니". > 아보리지니는 전세계애서 가장 오래된 민족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려 4만년 ~ 7만년으로 알려져있다. 대한의 역사가 제 아무리 기원전부터라고 해도 반만년이니, 이들의 역사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더불어 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과 약 220년전까지 문명화되지 않은 원주민으로 학술적으로는 그 가치가 매우 높은 민족이다.  아보리지니는... 그들의 생김새, 문화 등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기 매우 힘들다. 일단 모습만 언뜻 보면 흑인같으면서도 북미 인디언같기도 하고, 사모아 군도인 같기도 하면서도 인도인같기도 하다. 물론 초창기 인간의 어느 한 분파에서 시작되었겠으나, 너무 오랜 시간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어느 한쪽에 속하지도 섞이지도 않은 "오리지널" 혈통이라고 치는 학자들도 있다. (현존하는 아보리지니는 99.9% 순수혈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아시아 - 멜라네시아 군도를 잇는 라인으로 호주 대륙에 유입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실제로는 코카서스 인종과 멜라네시아의 혼혈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보리지니들이 사냥용 무기로 검 보다는 창과 대궁을 사용한 것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보리지니의 피부색은 흑인과 유사하나, 근골격계는 흑인과 매우 다르다. 한때 학술적으로 흑인으로 분류된 적도 있었지만 흑인에게 있는 근골격계의 특징, 특히 근섬유밀도의 특징이 아예 없다. 체형은 아시안에 가깝다. 아담하고 군살이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비만에 시달리는 체질이 많다.  과거 아보리지니들은 수명이 매우 짧았다. 많은 사람들이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호주 대륙이 질병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호주 대륙이 질병에 매우 취약한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의 수명은 곧 전통 문화와 직결되어, 마리화나를 진통제로 사용하는 등의 민간의술은 아직도 널리 퍼져있는데, 문명의 한계로 인해 역시 의술보다는 주술이 보편화 되었다.  호주 통계청 ABS의 원주민 인구 조사 자료 중 최신은 2006년 6월 30일자 조사로, 원주민이 차지하는 인구비중은 호주 인구의 2.4%에 달하는 약 51만7천명이다. 아보리지니 문화 아보리지니의 문화는 곧 "신령"이다. 그들은 신과 영의 존재를 강하게 믿는데, 그들이 남긴 곳곳의 유적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만의 토테미즘이 믿음의 근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신과 영원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믿는데, 호주 내륙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산성 토양에서 추출한 추출물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변색되지 않고 영원히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오커" Ochre라고 불리는 대표적 안료는 암벽 표면과 반응하여 그 문양이 영구적으로 남는다) 그런 식으로 영원을 표현했다.  아보리지니에게 있어서 땅이란, 곧 신을 의미한다. 항상 땅에 대한 신성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땅에서 난 모든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다. 땅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신과의 대화라고 여기며 신의 힘을 빌려 축복이든 저주든 주술이든 뭐든 그들은 불을 피워 축복하고 저주하고 주문을 읊는다.  신성을 믿는 그들의 문화는 그들이 남긴 예술작품들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오커를 이용해 그려지는 점과 선의 예술은 곧 만물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서부터 선은 점들의 집합이며, 선은 면과 공간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해괴하고 난해하기 이를데 없지만 아보리지널 문화는 전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문화들 중 하나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아보리지니의 전통 악기로 알려진 "디저리두"(Didgeridoo : 디저리두는 백인들이 붙인 이름이며 원주민어로는 "이다키"(Yidaki)가 맞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관악기로써 "우웨잉오오이이어우에우웨에에에어에어에엥" 하는 저음 위주의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소리를 낸다. 유칼립투스 나무를 이용해 만들며 정해진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악기마다 전부 다른 모양을 하고 있고 나오는 소리도 다르다. 리드(떨림판)이 없어서 혀나 입술을 리드 대신에 부르르 떨면서 불어야 하는데 부는 방법에 따라서 별의 별 기상천외한 소리가 난다. (비트박서가 불면 사운드가 장난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유로비트나 테크노 댄스뮤직에 매우 잘 어울려서, 믹싱을 한 CD를 길거리에서 파는 (가짜) 아보리지니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자가 없었던 아보리지니들은 악기 연주와 춤, 노래를 문자 대용으로 사용했다. 즉, 그들은 문화 자체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땅과 자연을 신성시하는 그들의 사상을 견고히 했으며, 문명이라 하기엔 그 결과가 부족하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살아 온 것이다. 비록 금속제련이 유입되지 못하여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나 외부와 큰 교류가 없이도 독자적으로 화전을 이용한 훌륭한 농경을 일구었고 해안지방에서는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여서 호주 북부의 부족들은 사모아 군도인들과의 교류도 있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아마 그들은  금속을 제련하거나 종이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거나 나무를 베는 등의 자연훼손... 즉 신성의 훼손 을 철저히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자연의 위대함과 공생하던 마지막 인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오에오오오옹ㅇ오오오ㅗㅗ오오오에에오에오ㅔ웨웨웨오오오옹 > 아보리지니 수난의 역사  호주 대륙은 "캡틴 쿡"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최초 발견은 네덜란드다.  1606년 네덜란드가 호주 북부에 최초로 도착한것을 시작으로, 해안선을 따라 동부, 타즈마니아까지 항해한 것이 최초이며, 영국인으로서는 1688년에 "윌리엄 댐피어"(William Dampier)가 호주 서부에 도착한 것이 최초이다. 영국이 호주를 영국령으로 선포할 수 있었던 것도 네덜란드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호주의 지배권을 영국에 넘겼기 때문이다. 캡틴, "제임스 쿡"(James Cook)이 1770년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호주 동해안, 지금의 시드니 인근 "보타니 베이"(Botany Bay)이다. 이후 해도가 완성되었을 때 까지만 해도 아보리지니들과의 충돌은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두발로 서서 두발로 뛰는 기이한 동물을 보고 캡틴 쿡이 원주민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원주민이 "캥거루"(I don't know : 뭔소리여?)라고 대답한게 캥거루가 캥거루가 된 사연은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물론 아보리지니들 중 다수가 캡틴 쿡을 신성한 땅을 침범한 악마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찬반논쟁은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고,  방송에 출연한 아보리지니 가이드인 "딘 켈리"는 방송에서 캡틴 쿡과 아보리지니의 첫 만남을 비극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그들(애버리진 조상)은 그런 큰 배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큰 새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두명의 아보리지니 전사가 성스러운 이 땅에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려고 내려왔는데, 몇분 후에 사격이 개시됐고 그들은 모두 죽었죠". "캡틴 쿡은 잘못된 경로로 들어왔고, 총질은 우정을 위해 절대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들은 아직도 그것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죠". < 첫번째 호송 선단이 도착한 1월 26일은 호주 개천절인 "Australian Day"(호주인의 날)로써 기념되는데, 아보리지니에게는 굴욕스런 날이기도 하다. >  캡틴 쿡이 해도를 완성 한 후, 1788년 1월 26일에 죄수 정착촌을 건설하기 위해 "아서 필립"(Athour Phillip)함장이 최초로 호송 선단을 꾸려 지금의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가 탄압의 시작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다기 보다는 캡틴 쿡이 무슨 짓을 했다는 문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무력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원주민을 혐오한 사람들의 총질로 많은 생명이 학살되긴 했으나, 정작 아보리지니를 죽인 것은 뒤이어 도착하는 호송 선단이 끊임없이 나르는 질병이 원인이었다.  독감과 천연두, 호송단원의 성 노리개로 이용된 아보리지니 여성들로인해 번겨가는 각종 성병, 결핵앞에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거기에 원주민을 짐승으로 보는 영국인들의 무차별 학살까지 더해져 1900년까지 전체 아보리지니 인구는 무려 90%가 급감했다.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 멸절 호주 남부의 섬, "타즈마니아"(Tasmania)주는 1643년 11월 24일 최초로 타즈마니아를 발견한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즈만"(Abel Tasma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아벨은 처음 타즈마니아에 당도했을때 만난 원주민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곱슬머리를 한 키 작은 사냥꾼이자 수렵인이었으며, 개방적이고 낙천적이었다." 오래 전 타즈마니아는 사모아 군도와 마찬가지고 호주 대륙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난 후 바다의 수면이 점점 높아졌고 카약으로도 넘을 수 있던 얕은 바다가 해협으로 변하면서 타즈마니아 아보리지니들은 대륙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게 약 1만년전의 이야기며 덕분에 타즈마니아 아보리지니는 호주 정착민들로부터 그 어떤 아보리지니 부족보다도 더 특수한 캐이스에 놓여지고 말았다. 아직도 유지되고 있지만, 타즈마니아는 호주의 그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유의 삼림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심해의 심해어처럼, 고유의 생태계는 고유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타즈마니안 타이거"와 "타즈마니안 데빌"이 그러했으며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들도 고유종의 일부로 자연과 융합하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한 인간이지만 자연 앞에서는 한낱 나약한 피조물일 뿐이었다. 죄수들을 싣고 온 정착민의 입장에서, 타즈마니아는 죄수를 가둬놓기엔 하늘이 주신 땅이었다. 섬이라 도망을 가봐야 바다밖에 없고 삼림으로 도망가도 타즈마니아 타이거의 밥이 될 것이기에, 천애의 감옥으로 사용하기엔 그만한 곳이 없었다. 문제는 원주민들이었지만 정착민들의 눈에 그들은 타즈마니안 타이거나 타즈마니안 데빌처럼 동물의 한 종으로써 비춰졌었나 보다.  타즈마니아에서의 아보리지니 학살은 그 잔혹성으로는 인두겁을 쓰고 자행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굳이 총칼질을 하지 않아도 역시 질병으로 수많은 원주민들이 쓰러져 버렸다. 약 1만명에 달했던 원주민들은 순식간에 1천명 정도 남는가 싶더니, 결국 300명에 남기에 이르러서야 구원투수를 얻었다. 이대로는 타즈마니아 아보리지니들이 멸절할 것으로 여긴 선교사, "조지 로빈슨"(George Augustus Robinson)은 타즈마니아 총독에게 건의하여 남은 원주민들을 플린더스 섬으로 이주시킬것을 건의한 것이다. 정착민 입장에서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영토를 얻을 수 있었고 원주민 입장에서도 전염병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정착민의 정착이 완료된 이후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조건부로 이주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 1847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남은 47명의 순수 혈통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들 중 네명으로, 맨 오른쪽은 마지막 순수 혈통인 "트루가니니"이다. >   하지만 원주민의 이주는 그들을 아이언 메이든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 리 없었다. 조지 로빈슨은 원주민들의 안전을 염려해서 그들에게 정착민의 문화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지만 상대는 수만년동안 자연에 속해서 수렵하고 체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주한지 11년째인 1847년, 살아남은 47명의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순수혈통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였던 "트루가니니"(Truganini)가 1876년 사망함으로써,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는 멸절하고 말았다. 정착민들이 타즈마니아에 터전을 꾸리기 시작한지 겨우 73년동안, 5천에서 1만명으로 추산되었던 타즈마니아 아보리지니는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 "트루가니니"의 유해는 영면하지 못하고 1964년까지 이렇게 타즈마니아 호바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 덧    < 1936년 9월 7일, 마지막 타즈마니안 타이거인 "벤자민"이 호바트 동물원에서 사망함으로써 결국 멸종되었다. > "타즈마니안 타이거"(혹은 타즈마니안 주머니 늑대)는 호랑이 무늬에 호랑이보단 늑대의 체형에 가깝고 특이하게도 캥거루처럼 아기 주머니가 있는 특별한 종이었으나  정착민들과 가축들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개체들 중 대부분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공격하고 가축에게 해를 입혔던 개체는 타즈마니안 타이거보단 호주 전역에 퍼져있는 들개인 "딩고"(Dingo)가 대부분이었지만 개체수가 어마무지한 딩고들 틈에서 많은 타즈마니안 타이거가 쓰러지고 말았다. 개체수가 너무 적어 결국 멸종 위기에 몰린 타즈마니안 타이거는 1930년, 농장주변을 배회하던 것을 발견한 한 농부의 사격으로 마지막으로 목격된 야생종이 사망하였고 6년 후인 1936년 9월 7일엔 호바트 동물원에서 마지막 타즈마니안 타이거인 "벤자민"이 사망하여 공식적으로 멸종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2012년에 타즈마니아 중부에서 타즈마니안 타이거로 추정되는 동물이 카메라에 포착됨으로써 해당 동영상의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 다른 타즈마니아 고유종인 "타즈마니안 데빌"은 작은 반달곰같은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으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흉악하여 "악마"라고 불린다.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으나, 역시 로드킬 등 인위적인 이유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타즈마니안 데빌은 만화 캐릭터인 "태즈"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강탈당한 세대 1901년 호주가 영국 연방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하면서부터, 아보리지니에 대한 근대적 탄압이 본격화되었다.  전체적인 개념은 선교사 조지 로빈슨이 플린더스 섬으로 이주시킨 타즈마니안 아보리지니에게 했던 오류와 유사한데, 일단 모든 아보리지니 아이들은 호주인 가정으로 강제 위탁시켜버렸다. 호주 정부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영어와 선진문물을 가르쳐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인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핑계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보리지니 문화를 말살하고자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호주인 가정에 속해있지 않은 아보리지니 아이들이 발견되면 경찰에 신고되었고, 경찰은 강제로 아이들을 부모들로부터 뜯어 내어 관리국으로 넘겨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호주인 가정으로 위탁된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자아이들은 성폭행을 당하기 일쑤였고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노예나 마찬가지인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엔 수많은 아보리지니들이 고기방패 역할로 징병되었으며, 그로 인한 영광은 호주가 다 누렸다. 한때 250개가 넘던 부족들간의 언어와 문화는 거의 멸절상태에 이르렀고, 전통은 몇몇 엘더들을 통해 간신이 그 명목만 유지되었다. 원치 않게 태어난 속칭, "튀기" 아이들은 온갖 학대와 멸시, 눈치 속에서 살아야했고 그나마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서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다. 침략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백인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던 침략자들에 대한 분노는 꺼지지 않았고 그들의 조상이 겪었을 탄압의 역사는 계속 대물림 되어졌다. < 한때 캔버라 국회 의사당 앞에 세워져 있었던 "아보리지니 대사관". "백의주의 호주는 검은역사 뭐시기"라고 적힌 한글 플래카드가 보인다.  > 자,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도 왠지 호주 역사책을 쭉 읽는 듯 한 기분이 눈두덩이에 발린 맨소래담처럼 지울수가 힘들지만, 혹시나 아보리지니가 뭔가 싶어서 따로 검색을 해보거나 하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그냥 쭉 뱉었다. 검색을 통해 나온 자료들을 병합하여 자주 겹치는 부분들만 간추렸으니 월요일 오전의 짜증처럼 끊이지 않을 것 만 같은 위의 설명을 다 읽었다면 이하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제서야 오늘의 토픽을 이야기 하게 되는데, 그것은 과연 지금의 아보리지니는 어떠한가? 이다. 2008년 호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이후로 뭔가가 바뀌기 직전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과연 뭔가가 바뀌긴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정치하는 것들의 하는 말의 신뢰도란 마치 아이를 출산하겠다며 장담하는 아버지와 그 논리적 풍경이 같아서 남의 나라 일이기는 하지만 또 하나 배운다 셈 치고 디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먼저 필자가 개인적으로 부러운 부분을 후려본다. 케빈 러드는 총리 자리에 앉으면 오랜 역사속에서 소외받아 온 원주민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걸었고 취임 이후 두달만에 전 호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아보리지니들에 대한 처우개선에 관해서는 실로 여러가지 방식의 대책이 튀어나올 수 있었다. 다수당의 당수가 연방 의회에 처우 개선을 위한 법안을 올리고 의석 숫자로 그것을 통과시키는 간단한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는 단순한 법안 상정으로 이 문제를 끝내지 않았다. 국가 수장의 신분으로, "사과합니다"라는 말이 되풀이되는 연설문을 호주 국민과 국회의장 앞에서 마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듯 경건히 읽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할때마다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호주가 이 땅을 찾아왔을때 그들의 선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사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그들에게 주권을 주는 행위는 굳이 국가 수장이 나서서 사과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보다 직접적인 사과를 택했다. 긴 연설문은 정착의 시기에 그들이 무슨짓을 했고 그것에 대해 말했을 뿐, 단 한마디의 변명과 명분도 끼어있지 않았다. < 출연 : 박근혜, 연출 : 이정현같은 이런게 아니었다. >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침탈로 얻은 것이라 정의하며 과거 행해졌던 만행에 대해 원주민에게 대놓고 사과하는 것은 어찌보면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나 읽는 너님들이나, 그게 그게 아님을 잘 알수 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일본의 우익정부와 비교해서 가끔 독일의 전범 청산과 반성, 과오 인정의 태도를 인용하며 왠지모를 대인의 풍모를 느끼곤 하는데, 케빈 러드의 사과 연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를 인정함으로서 호주의 자존심을 역사적으로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에 띄운 것이다. 그리고 총리의 건의는 기립박수와 함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는 원주민 탄압과 학살의 역사로는 호주와 우등을 타두던 미국에서조차 없었던 일이다. 뭐... 2009년에 당선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셀프로 "흑인과 원주민들에게 미국이 한 짓에 대해 사과합니다"라고 말하면 좀 그럴려나. 자신이 되려 사과받아야 할 입장일테니. 물론 호주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강탈당한 세대에 대한 사과 이후, 호주 정부는 전문가를 통해 처우 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수집했다. 원주민들에겐 일정치의 사과와 보상이 주어졌고 2010년에는 아보리지니 문화와 언어를 헌법으로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국민 투표를 추진하기도 했다. 총리의 사과 이후, 아보리지니들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소중한 문화 유산인지에 대한 전국적인 각성이 일었다.  "NILS"(National Indigenous Language Survey: 호주 원주민 언어 설문조사)에서 "호주 원주민의 언어는 당장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멸을 맞을 것이다"라는 결과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라는 연구 결과를 냄으로써, 원주민 언어 보존을 위한 지원과 투자와 관심이 국내외로 커져나가고 있다. 호주 정부가 적잖은 노력들로 아보리지니에 대한 존엄성과 그들의 가치를 되세기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220년이 넘는 탄압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아보리지니들은 근대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기엔 너무나 독특하다못해 이질적인 신령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호주 정부는 차치하고서라도 호주의 문화와 융합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렇 것들이 있다. 아보리지니들의 이동수단은 워킹이다. 가까운 거리든, 먼 거리든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걸어서 이동을 한다. 자식이 아파서 죽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엠뷸런스를 부르지 않고 애를 들쳐업고 며칠 밤 낮을 걸어 병원에 가고 그러는 동안 아이가 세상을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영혼을 믿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믿기 때문에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가족에 속한 노인들 중에 누군가 수명이 다해 집에서 사망하더라도,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집 안에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그 집에서 살지 않는다. 호주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보상 차원에서 거주지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런 해프닝도 가끔 발생해서 관리에 상당한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질서와 법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아보리지니들은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되어 정부의 보호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담당자와 만날 일이 생기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심지어 새벽이라고 해도 불쑥 찾아온다. 물론 담당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마치 옆동네 산책가듯이 도보로 며칠을 걸려서 걸어온다. 민폐와 실례라는 개념은 적어도 그들 문화에서는 없다. 호주 정부는 아보리지니의 신령한 문화와 정부의 정책이 서로 맞물리지 않아 난색을 표하곤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220년간 억눌려온 과거는 제 아무리 지치지 않고 코 끝에 꿀을 발라준다고 한들 쉽게 풀릴 수 있는 응어리가 아니다. 그들은 억압받아 온 역사동안 사회적 약자로 완전히 도태되어서 지금으로선 보호받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총칼과 질병을 남의 몰고와서 식구들을 다 죽여놓고 마치 제 집인양 행세하는 꼴이 그저 그런 "꼴"로밖에 보이지 않음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공식적인 사과가 있기 전까지, 아보리지니들은 그저 캥거루와 마찬가지로 호주 땅에 원래부터 있었던 문화 유산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수렵과 체집을 하며 살아야만 했고 그들이 현대화 되더라도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엄청난 괴리에 빠져있다. 호주 정부가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호주의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의 흑역사를 썼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이 하루 아침에 곱게 보일리가 없다. 호주의 보상을 받은 아보리진들은 그들이 수만년동안 살아 온 인랜드(내륙)에서 그들만의 군소 커뮤니티를 이루면서 산다. 주택이 주어지긴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폐가처럼 되어버리기 일쑤였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 보조금이 먹여 살려 주기 때문에 지급 받은 돈은 보통 술이나 마약으로 탕진되곤 한다. 그런 군락에서 자란 아이들은 보통 갱이나 사회적 약자로 성장한다. 물론 교육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밖으로 나와서 호주 커뮤니티와 어울리며 그것을 취하는 아이는 원주민 전체 인구로 통틀어보면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최근까지 수렵과 체집을 하면서 살아온 고대 인류다. 물론 이방인이 실어 온 새로운 문화에 순응하며 잘 살아가는 원주민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먹고 사는 모든 것이 자연으로부터 나온다는 자연주의 이념과 내가 먹고 사는 모든 것이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부터 나온다는 자본주의 이념은 물과 기름도 아니고 화약과 부싯돌같은 관계인 것이다. 현실적인 조언을 하자면, 호주에서 딱 세가지만 피하라고 하고 싶다. 첫째는 한국인, 둘째는 위험해 보이는 사람, 셋째는 위험해 보이는 아보리지니다. 전에 얘기했던가? 도망갈 곳도 없는 달리는 트레인 맨 끝 칸에서 아보리지니 갱들한테 뒤통수 완전 털린 적 있다고. 상대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지금 살아있는 것이지, 지금까지 필자가 소개한 다른 또라이들처럼 쇠붙이라도 하나 갖고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글에다 대고 당시 상황을 화풀이하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엘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는 호주 내륙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노던 테리토리 주의 명소 중 하나다. 호주의 대표적인 아웃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명소라고 할 건 별로 없고, 세상의 배꼽이라고 하는 "에어즈 락"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소가 된 곳이다. 만약 당신이 앨리스 스프링스의 시내를 단 10분만 왕복으로 거닐어 본다면 왜 그곳이 "어쩔 수 없이" 명소가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고 사실상 명소가 될 수도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러길 추천하진 않는다. 엘리스 스프링스엔 몇만년전부터, "아렌테"(Arrernte)라는 부족이 터줏대감으로 살고 있다. 물론 예약을 하면 그럴듯하게 생긴 아렌테의 족장인지 마도사인지처럼 생긴 할머니 할아버니 아보리지니가 나와서 웰컴댄스로 환영한 후 그들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오커 페인팅 같은 몇가지 체험을 해 볼수는 있지만 실제로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렌테 부족의 후예들은 당신들의 껍데기라도 벗길 기세로 덤빌것 같은 위화감을 풍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큰 아보리지니들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DDR 4편에서 촬영을 한다는 이유로 스탭과 출연진을 공격하는 앨리스 스프링스의 원주민을 만날 수 있다. < "울루루"앞에 세워진 표지판. 아보리지니는 "등반하지 마라",  관리자는 "모험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다. 엘리스 스프링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들 중 하나다. >  우리의 땅을 빼았겼어, 우리의 여자들이 강간당했어, 우리의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겼어, 그들은 신성한 이 땅을 파괴해, 대화하지 않고 우리에게 총을 쐈어... 라는, 실제 피해로 인한 피해의식이 2백년이 넘게 쌓여 왔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은, 절대 그들의 피해의식의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앨리스 스프링스를 가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고. 오늘의 DDR영상은 이쯤에서 봐야 좀 이해가 갈 것이다. 자. 만약 이 글을 읽기 전에 아보리지니에 대해 그 이름만이라도 알던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이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나오는 신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일테니, 먼 나라에서 있었던 어떤 역사적인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들의 사정에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호주 원주민들은 빼앗김의 역사에 분노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총리가 사과하기만을 기다린 셈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무언가를 한 건 사실이지만 호주가 알아서 사과할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그들은 그들의 것을 되찾기 위해 뭔가를 하지 않았고 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극소수가 노력을 하긴 했지만 그들은 사라져가는 그들의 것을 되찾으려고 애쓴게 아니라 자신의 땅을 점령했다는 이방인이 주는 주권을 얻기 위해 뭔가 하긴 했다. 필자가 싱싱했을 무렵에, 잭스키스라는 초기 아이돌의 데뷔곡이었던 "학원별곡"이라는 곡이 있었다. 무겁고 둔탁한 사운드로 한국식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한 그 곡은 팬들의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학원별곡"이라는 곡은 제목만 생각날 뿐, 가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비해 오히려 똑같이 무겁고 둔탁한 사운드로 한국식 교육을 비판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라는 곡은 아직도 가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그게 무슨 차이 때문인지 궁금했다. 내가 서태지를 더 좋아해서인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음반 판매량이 더 많아서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오래간만에 "학원별곡"을 다시 들어봤을때, 그제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전달하는 내용, 즉 의도의 차이였다. "학원별곡"은 "난 컴퓨터가 될거야"라느니, 이러다 미쳐버리고 말거라느니 하는 학교의 실상을 지적만 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반면, "교실이데아"는 우렁찬 안흥찬 보이스가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냐는 "메세지"가 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날 들었다 놨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역사속에서 "메세지"가 담겨 있었던 선열들의 모든 몸짓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장식용 민주주의를 취하던 시절에 수많은 선생들이 그 메세지와 전달하고자 투쟁하였고 마지막까지도 메세지를 전달하며 쓰러져갔다. 한 전범국가가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여 청산하지 않고 어리석은 역사를 계속 쓰고 있는 동안에도, 전쟁의 피해자인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쉬지않고 그 국가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메세지를 전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불합리 및 그것을 이겨나가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꽃같은 학생들을 태운 한 여객선의 어이없는 침몰을 통해 이 나라의 시스템 가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메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안에서 공명하였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의심의 여지도 없는 근대화의 피해자들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빼앗기다 못해, 근대화의 이질과 총칼 앞에서 순수 혈통마저 빼앗기는 통한의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하지 않았다.  200년 역사속에서 완벽히 도태되기 전에도 그들은 분명히 효과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더 이상 무력과 멸시가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는 시대가 이미 수십년전에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호주의 총리는 사과와 더불어 "잘 해보자"는 "메세지"를 전했고, 그들은 그제서야 사과를 받아들였다. 아보리지니들이 뭔가를 제대로 해서 이뤄낸 결과가 아니다. 메세지를 전하지 못한 쪽이, 메세지를 전한 쪽에 수긍한 것 뿐이다. 아보리지니.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이며 그 고대의 피는 아직도 살아있다. 천성이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그들에게 폭력과 질병, 멸시는 너무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차마 알 수가 없었다. 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지. 그리고 모든 위협이 가시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여 총리가 사과하여 "메세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마사지"로 이해한건지, 여전히 가만히 있는 중이다. 애꿎은 약과 술과 행인에게 화풀이 하면서. 그것이 호주 정부의 책임일 수 있으나, 호주 정부는 이미 사과하고 대책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뭔가 하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겠다. 2008년 이전에는 전적인 호주 정부의 잘못이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그렇지 않다. 느그들 중 누구는 "왜 지성인인 우리와 원주민인 그들을 갖다 붙이느냐"고 할 수도 있다. 액면상의 지성 레벨로 본다면 우리와 호주 원주민은 비교할만한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  그런데 한국에서 꽤 잘나가시는 집안의 어느 한 도련님께서, "국민의 수준이 미개"가 어쩌고 하셔서 말이지.  비교할 대상이 못되니 어쩌니 화라도 내려거든 전 국민을 원주민으로 만드신 저 도련님에게 먼저 화내고 오라. 올 때 메로나. 출 처 http://photouni.tistory.com/241 https://mirror.enha.kr/wiki/%EC%98%A4%EC%8A%A4%ED%8A%B8%EB%A0%88%EC%9D%BC%EB%A6%AC%EC%95%84%20%EC%9B%90%EC%A3%BC%EB%AF%BC http://hojutour.blogspot.com.au/2013/07/blog-post_7882.html http://dralways.tistory.com/10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onh108&logNo=80173031662&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http://www.abs.gov.au/websitedbs/D3310114.nsf/home/home?opendocument http://www.abs.gov.au/ausstats/abs@.nsf/Lookup/by%20Subject/1301.0~2012~Main%20Features~Aboriginal%20and%20Torres%20Strait%20Islander%20population~50 http://aboriginalart.com.au http://austcamping.blogspot.com.au/2012/07/uluru-kata-tjuta-national-park.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