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 오일장 밤새 내리던 비는 새벽이 되어서 더욱 거세졌다. 어스름한 새벽에 눈을 떴지만 이불을 덮어 쓰고 누워 꼼짝 않고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었다. 간간히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도, 자동차 불빛도, 운동장 건물도 빗물이 흘러내려 일그러져 보였다.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일곱 시까지 그렇게 누워서 무슨 생각들을 많이도 한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잡념에 사로잡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기억나는 것은 서쪽으로 갈지 동쪽으로 갈지를 고민 했던 것이다. 서쪽으로는 길과 지리를 잘 알고 있다. 천안에서 아산으로, 삽교천을 지나 당진, 서산, 태안, 안면도, 해미, 보령, 대천, 서천으로 이어지는 길과 풍광이 한 눈에 그려졌다. 천 번도 더 오갔을 그 길. 눈길에서도 졸았던 그 길. 24시간 풀로 뛰고 12시간을 쉬었던 그 길. 잘 알아도 천안에서 서산으로 가는 그 길은 가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강화도에서부터 그 길이 아닌 길로 군산까지 내려가리라. 다시 가던 길로 돌아가자고 생각한 때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교 가는 아이들이 밀려나온 시간이었다. 짜여진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까지도 주눅이 든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배웠으니 그 무리에서 벗어난 것에 태연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붐비는 천안 시내의 출근길을 빠져나와 오창, 증평을 지나 괴산군에 이르렀다. 보은 다음으로 괴산, 단양, 영월, 태백, 정선, 오대산을 넘어 동해안에 이르는 것이 7월 까지의 계획이었다. 이 코스는 추억여행에 가까운데, 괴산은 군대훈련소,(ㅋㅋ;;;) 단양은 내가 보았던 가장 삭막했던 공장,(시멘트 공장에 납품을 다녔었는데 그 곳을 일이 아닌 여행으로 가보고 싶었다.) 영월은 동강에서 만난 거지 아저씨의 생사여부의 확인, 태백은 통리의 지하여관과 통리역,(한겨울 노가다 숙소가 통리역 앞 지하여관이었는데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 여관. 정말 지랄이었다. ;;;) 정선은 아우라지,(<봄날은 간다>에선 그리도 근사했던 아우라지를 한겨울 노가다 판에서 만났을 때의 참담함이란...) 오대산은 가장 아름다웠던 숲길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훈련소 생활을 하고는 괴산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간 것이 괴산에 대한 모든 기억이지만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괴산군에 들어서자 때마침 오일장이 열려 있었다. 낯선 곳이긴 했지만 오일장이 열린 날이어서 그런지 흥겨운 미소가 번져나왔다. 도시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을 볼 때와 오일장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을 볼 때,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도시에선 어서 벗어나고 싶지만 오일장에선 함께 뒤섞이고 싶어진다. 수많은 유혹들이 있을 줄 알지만 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순전 먹을 것만 눈에 띄누만... 쩝  ㅋㅋㅋ;;; 과일, 튀김, 족발, 국밥, 생선을 비롯해 지역에서 나는 갖가지 물건을 사고, 팔고,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래도 한자락 부르고, 군수 후보로 나온 사람은 좌중 앞에서서 연설을 이어가는 시장판이 엉덩이를 들썩일 만큼 흥겨웠다. 대낮부터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아저씨들은 비틀거렸지만 타박하는 소리, 눈빛 하나 없이 흥이 돋아 있었다. 바다에서는 달의 움직임을 따라 살아가고, 산과 들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맞춰 살아가고, 도시에서는 시간에 맞춰 살아간다면 오일장 주변의 사람들은 5일을 주기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일에 한 번, 혹은 열흘에 한 번 장이 열리는 날 일손을 놓고 장으로 나와 한 잔 걸치고 고등어 한 손과 참외 한 망을 양손에 들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노인네들의 삶이 그려졌다.  내일이 되면 고양이들만 어슬렁거리는 썰렁한 길거리가 될테지만 오일 후에는 또 다시 사람들이 몰려 나올 것이다. ‘다들 어디서 그렇게 살고 계신거요?’ ㅎㅎㅎ 장날 시장통에 발걸음 했는데 국밥 한 그릇 먹지 않고 그냥 가면 서운하지. 펄펄 끓는 들통에서 퍼 담은 돼지국밥에 소주 반병을 마셨더니 지나가는 할머니도 예뻐보이고 족발써는 아주머니도 섹시해 보이고 그러더라 뭐. ㅎㅎㅎ 하루 종일 빗낱이 떨었어도 나무 아래까지는 적시지 않아 나무그늘 아래 누워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 세시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괴산관광지도를 구해 펼쳐보았더니 쌍곡구곡과 주변 산세가 좋아 보여 그 곳으로 길을 나서 제수리재에 이르렀다.  벙어리를 대신해서 집이자 발이 되어줄 녀석  해발고도도 적당하고 숲이 울창해 차를 세우고 산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복령을 품었을 만한 소나무가 제법 많아 보였다. 해질 때까지 탐침봉으로 땅을 찔러 복령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내일은 아침부터 산에 올라 복령을 찾아보아야겠다. 내일은 아마도 복령의 실체를 확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고지가 높아 그런지 선선하고 모기도 없어서 좋다. 잡생각 두 시간 끝에 길을 잘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장고끝에 악수를 둔 것은 아닌 듯.  개망초 춘희의 곁을 언제나 따라 다녔던 개망초. 춘희는 어느 별, 개망초 흐드러진 들에서 코끼리 타고 웃고 있을까.  <고래>에 그려지는 평대를 떠올려 볼 때 항상 생각났던 곳이 왜 괴산였는지 모르겠다.   터미널 옆 다방 때문였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