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육감에게 교복문제만큼은 부탁드리고 싶다. 교복 , 말만 들어도 아득한 옛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낱말이다 .   저 옛날 (?) 일제가 남겨 두고 떠난 까만색 교복과 다까끼 군사 정권이 건네 준 얼룩이 교련복만이 학생이 입을 수 있는 옷의 전부인 줄 알고 학교를 다닌 진정한 교복세대이다 .   까만색의 단순한 교복도 교모를 비딱하게 걸친 이덕화 형님이 입으면 포쓰가 있고 예쁜이 임예진 누나가 입으면 요새 아이돌은 저리가라다 .   우리 세대에게 교복은 분명 의복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     제복은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 . 그리고 그 처음은 군인들에게 입히기 위한 군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 군복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의복이다 . 통일성을 강조함으로써 통솔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발상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 즉 , 제복은 구성원들에게 계급적 통일성을 부여함으로써 개인의 일탈을 방지하고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것이다 .   교복 또한 비슷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 비록 그 옷을 입는 대상이 다르다고는 하나 그 속성은 제복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   1980 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도 교복자율화를 실시 한 적이 있었다 .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복을 입음으로써 생기는 문제들 , 유해환경에의 노출로 인한 탈선 증가 , 교외지도의 어려움 ,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 조성 , 사복구입에 따는 가계 부담 증가 등의 이유로 교복 자율화를 각급 학교 교장에게 위임하는 식으로 복귀하고 말았던 적이 있다 .   학생들을 여전히 ‘ 통제와 통솔 ’ 의 대상으로 보는 당시의 각급 학교 교장에게 복장 자율권을 맡긴다는 것은 교복으로의 회귀밖에는 상상할 수가 없다 .   교복을 여전히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유 또한 위에 열거한 복장자율화 철회 당시의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생들 간의 복장 경쟁으로 인한 위화감 조성과 가계 지출 증가에 대한 우려를 그 이유로 꼽고 있다 .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우려는 하나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 말하자면 오늘날 아이들이 입는 교복의 95% 는 이미 유명 브랜드 교복으로이며 , 이전에 존재하던 비메이커 교복들은 그 위화감 경쟁에서 탈락하고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 요즘 아이들이 입는 교복은 거의 전부가 평소에는 절대 입을 것 같지도 않은 아이돌들이 광고하는 유명브랜드 제품들로써 , 그 가격이 옷의 품질이나 마감 , 원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 이러한 뻥튀기는 이미 여러 차례 고발 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도 없다 . 연간 수백만 벌이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비싼 가격이며 , 이것이야 말로 이미 지금의 교복이 위화감 경쟁의 끝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면 좋겠지만 , 여전히 아이들은 경쟁한다 . 얼마 전까지 사회적인 문제가 되다시피 했던 외투가 그랬다 . ‘ 노쓰페이스 ’ 란 제품으로도 부족해서 그 안에 등급에 따른 경쟁을 하고 , 작년에는 캐나디언 구쓰니 몽클레어니 하는 식으로 그 경쟁의 끝은 높아만 가고 있다 . 비단 옷 뿐만이 아니다 . 신발은 신발대로 , 가방은 가방대로 , 휴대폰은 휴대폰대로 여전히 아이들은 경쟁을 하고 있다 .   말하자면 우려하고 있는 아이들의 경쟁에 따는 위화감 문제나 가계 소비문제는 교복을 입힌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소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   대학생들이 MT 갔다가 참변을 당한다고 MT 를 없애고 ,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다 참사를 당했다고 수학여행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 입으로 떠들고 있다 .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복장에 대한 경쟁심리를 교복을 입힌다고 해소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   더 근본적으로 학생들이 그러한 경쟁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 사회가 , 어른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 나아가 오늘날처럼 개성이 중요시 되는 시대에 옷 자랑 아니어도 자랑할 만한 것이 널려 있는데 , 굳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데 몰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획일화된 인력이 대량으로 필요했고 , 이런 인력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통제와 통솔이 우선시 되는 방식의 교육이 필요했다고 본다 . 그리고 당시에 교복은 ‘ 효율 ’ 증대에 있어서 분명히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 그것이 195,60 년대의 미국 , 6,70 년대의 일본 , 그리고 7,80 년대의 대한민국이었지 않은가 생각한다 .   하지만 이미 우리 국민소득은 2 만불대 중반에 이르고 , 더 이상 대량생산이 경제의 효율성을 가져다주는 시대가 지난 21 세기다 . 여기서 여전히 구태적인 방식의 교복문화를 고집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목을 조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 교복 ’ 은 그 자체로 보수성을 띤다 . 개인의 일탈을 용서치 않고 전체주의적 통솔에 따를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간혹 ‘ 교복을 입으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 는 식의 대답도 한다 . 이 얼마나 몰개성적이며 비창의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 21 세기에 더 이상 이런 식의 사고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 교복을 입는다고 해서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법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교복의 탄생 원리가 '창의성'보다는 획일성에 맞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이런 건 의문도 아님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보다 잘 사는 나라들 중에 여전히 교복을 고수하는 나라는 영국 , 일본 밖에 없다 . 그리고 이들 두 국가의 보수성은 여타 국가에 비해 매우 높은 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 교복을 입히는 것이 보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 교복이라고 하는 그 통일성 자체가 이미 ‘ 보수성 ’ 을 극심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 교복 ’ 이라고 하는 주어진 틀에 애들 스스로 갇히게 만드는 이 제도가 실상 너무 싫다 .   당장 교복을 철폐하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대안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일종의 ‘ 드레스 코드 ’ 만을 줌으로써 교복에 대한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하루라도 빨리 우리 아이들이 옷 자랑 , 신발 자랑과 같은 저급한 (?) 경쟁을 벗어나 더 창의로운 영역에서 경쟁하고 자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교육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새로 교육감이 되실 분에게 감히 제안 드린다면 , 개선되어야 할 많은 교육환경들 중에 교복문제도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     (처음 힘들게 쓴 글이 다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두번째 억지로 쓴 글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