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8~21일, 그 굵직한 기억들 딴지일보와 기사 제휴를 맺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편집부장 쫄깃한기타입니다. 《 비정규노동 》 106호에 실릴 글을 미리 올려 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센터')에서 일한 지도 어느덧 4 개월이 넘어갑니다 . 그 사이에 제겐 나름 굵직굵직한 일들이 있었지요 . 센터에 들어온 지 보름이 채 안 되어 딸이 태어났습니다 . 자식을 낳은 기쁨과 기르는 즐거움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제가 딸바보가 다 되었습니다 . 센터 편집부장이란 직함을 달기 전 제 직업은 역사교과서 편집자였습니다 . 출판업계의 고질병인 최악의 노동조건 , 경직되어 있으면서도 정권의 입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편집기준 ,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과서를 만들다 보니 교과서 편집자로서 자존감이 생기기는커녕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해 나가기도 힘들더군요 . 3 년 차 되던 해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대안적인 삶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다 센터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 그렇게 들어온 센터에서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집 《 쉼표하나 》 를 비롯하여 센터 격월간지 《 비정규노동 》 104, 105 호를 편집했지요 . 나름의 편집기준을 개발하고 , 상상력을 동원하여 디자인을 개선하고 , 살아있는 글들을 다루는 일은 역사교과서 편집자 시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신났습니다 . 위의 두 경우가 굵직하고도 신나는 것이었다면 지금부터 다룰 이야기는 굵직하고도 분노가 절로 이는 것입니다 .   2014 년 5 월 18 일 . 광주민중항쟁 34 주년이었지요 . 그 전날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故 염호식 님이 절절한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고 , 서울의료원에 빈소가 마련됐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 저는 통상 ,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 조문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 물론 예외는 있었지요 . 이번이 그 예외에 속하더군요 . 자신의 시신을 찾게 되면 지회의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달라는 유서 내용과 5 월 18 일이라는 날짜가 묘하게 화학작용을 하더니만 제 발걸음을 빈소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 빈소에 도착하니 공기가 정말 무거웠습니다 . 당연하겠지요 . 그런데 그 무거움 속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기류 또한 느껴지더군요 . 저는 당시 故 염호식 님의 부고 소식과 유서 내용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 착잡한 마음에 조문객들과 함께 술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고인의 생부에 대한 소문을 좀 들었을 뿐 , 성격상 정확히 확인된 사실이 아닌 것들에 귀 기울이는 걸 꺼리는 터라 잠자코 있었지요 . 다만 고인의 생부가 노조원들과 갈등 관계에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 추측 가능한 정황은 있었지만 ‘ 에이 , 설마 그러겠어 .’ 하고 소주만 입에 털어 넣었지요 . 경찰에 연행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 그 정황은 사실이었습니다 . 유족 대표라는 고인의 생부가 고인의 유지를 받들지 않고 고향인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겠다고 노조 조합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겁니다 . 이유요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 추정만 할 뿐입니다만 , 삼성 측에서 생부에게 억 단위의 돈을 건네며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을 치르게 해 달라고 했답니다 . 그 추악한 광경을 목격한 분도 있었습니다 .   단순한 조문객이었던 저는 다른 조문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 그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고인의 생부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눈물을 쏟고 있었습니다 . 당시에는 영문을 몰랐습니다 . 볼멘소리를 해 대던 생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더군요 . ‘ 뭐가 어떻게 진행되려고 그러나 … ’ 싶던 저는 길가로 나갔다가 다시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오는 길에 수백의 전경들이 노조원들을 밀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 장례식장에 전경이라니요 . 순간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랐습니다 .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뛰어갔습니다 . 처음엔 막연한 증오가 앞섰지만 이내 예전 기억들이 떠오르더군요 . 10 년 전 비정규직 관련 집회였던가 . 일선에서 전경과 대치한 상황이었습니다 . 마주섰던 전경에게 외쳤지요 . 왜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느냐고 . 그러자 그 전경은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말하더군요 . 자기도 시위대에게 맞아서 아프다고요 . 순간 전경들과 맞서는 목적의식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온몸의 힘이 다 풀려 버렸습니다 . 그 길로 대오를 나와 버렸지요 . 그 후로 집회에 나가면 절대 일선에 서지 않았습니다 . 늘 뒤에서 관망만 했지요 . 그런데 10 년 만에 , 그것도 졸지에 일선에 서게 된 겁니다 . 조합원도 아니었던 제가 일선에 서게 된 건 , 당시 장례식장에 사람 수가 적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입니다 . 당장이라도 전경 1 개 중대는 때려눕힐 기세로 달려들었던 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웅크려 밀기만 했습니다 .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요 . 그때까지도 전경들이 들이닥친 이유를 몰랐던 저는 “ 이유가 뭐냐 !”, “ 폭력 행사 말고 일단 말로 하자 !” 고 목이 쉬도록 외쳤습니다 . 진압 목적에 관한 경고방송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 중대장에게 얘기 좀 하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봤지만 , 들려오는 말은 “ 하나 , 둘 , 셋 , 밀어 !” 였습니다 . 나름 힘이 좋은 편이지만 3 개 중대의 병력이 밀고 들어오는 걸 막을 수가 없더군요 . 저도 모르는 새 전경들에게 둘러싸여 연행되고 있었습니다 .   금방 나올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 경찰이 진압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제가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 그런데 1 차 조사가 끝난 후 강남경찰서로 연행된 15 명을 모두 유치장에 입감시킬 거라더군요 . 조사를 더 해야 한다면서요 . 1 차 조사는 저희를 잡아 온 경찰들 따로 , 연행된 분들 따로 진행되었습니다 . 대질 조사는 없었습니다 . 황당하더군요 . 사실 관계를 조사하려면 대질을 하는 게 상식인데 말이죠 . 강남경찰서와 안의 유치장 , 정말 낡았더군요 . 적어도 30 년은 됐을 법한 곳입니다 . 2 평 남짓한 공간에 연행된 15 명이 나뉘어 7 명 , 8 명씩 갇혔습니다 . 남성 노동자들 , 그것도 밀고 버티느라 땀 뻘뻘 흘린 사람들이 모이니 냄새 , 죽입니다 . 체험 삶의 현장이 따로 없었지요 . 유치장에도 종교행사가 다 있더군요 . 연행된 다음 날 교회 아주머니들이 빵을 잔뜩 가져 왔습니다 . 측은한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며 맛있게 드시랍니다 . 아 !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에게도 그런 눈빛은 안 보낼 겁니다 . 그런데 이번엔 난데없이 성경 구절을 읊고 노래를 부릅니다 . 내용은 하나 같이 ‘ 회개하라 !’. 졸지에 끌려온 유치장에서 회개까지 해야 하다니 . 우리의 공권력은 참으로 자비롭습니다 . 옆방에는 공중파 뉴스에서도 꽤 떠들썩하게 다뤘던 강남 성형외과 6 인조 강도단이 잡혀 와 갇히더군요 . 잡혀 와서도 뭐 그리 떠들어 대던지 . 성형외과엔 현금이 많을 줄 알고 털었답니다 . 갑갑한 유치장 생활 속 이벤트는 이벤트일 뿐 . 억울하게 잡혀 온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지들과 저에게 빼앗긴 일상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 서로를 위로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 남편으로서 , 자식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하고 정의롭기에 최선을 다해 삼성 권력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   다음 날 2 차 조사가 끝난 뒤 연행된 15 명 중 12 명이 석방됐습니다 . 3 명이 남았지요 . 그 중 한 명이 저였습니다 . 연행되었던 사람들 중 대학생 1 명을 포함하여 노조원이 아니었던 저는 ‘ 불손한 외부세력 ’ 이라는 이유로 표적이 된 겁니다 . 원래는 15 명 모두 석방될 상황이었는데 , 검찰에서 늦은 시간에 강남경찰서에 연락을 해서는 저를 포함한 2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니 더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라고 한 모양입니다 . 세월호 참사 때도 공권력 집단의 상황 파악 능력이 일천하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만 ,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 유치장에 있는 제게 경찰관들이 물어 옵니다 . 혹시 쌍용차 어디 지부장이신가요 ?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이셨지요 ?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들 있는지 . 조사 받을 때 다 얘기했잖소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편집부장이라고 ! 제 이력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습니다 . 어쨌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답니다 . 대체 무엇 때문에 ? 성질이 머리끝까지 나더군요 . 당당하니 , 당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놈의 구속영장 하나도 무서울 거 없었습니다 . 그런데 구속영장 내용 , 가관입니다 . 그 중 구속 사유만 따져 보겠습니다 .   피의자 ○○○는 前 삼성전자 서비스 직원이었던 자로 現 비정규노동센타 회원인 자이다 . → 앞서 얘기했듯이 저는 전직 역사교과서 편집자였고 , 현직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편집부장 ’ 입니다 . 사실 관계조차 엉망으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 경찰 조서에 다 밝힌 바 있는데 말입니다 . 견 ( 犬 ) 찰이라고도 불리는 검찰 무리들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죠 . 어떻게든 얽어매서 구속시키고 싶은 . 피의자는 금속노조 노조원이 아니어서 상 피의자들과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행에 적극 가담하였으며 → ‘ 연대 ’ 의 가치를 폄훼하고 싶은 검 · 경의 지질한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지요 . 진압 목적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밀고 들어오는 전경을 막는 행위가 ‘ 범행 ’ 에 해당하는지 , 오히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야말로 ‘ 범행 ’ 이 아닌지 되묻고 싶은 부분입니다 . 채증자료 상 혐의사실이 명백함에도 반성하지 아니하고 → 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가 제게 보여 준 채증 사진들은 제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단순히 전경의 진입을 저지하다가 잡혀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더군다나 그 채증 사진들은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당시엔 제게 보여주지도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 급조한 티가 역력하지요 . 경찰관들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경찰관을 막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며 조사태도 또한 극히 불량한 자입니다 . → 예삿말 , 높임말이 뒤섞인 근본 없는 청구서 양식이 일단 눈에 띄네요 . 불량합니다 . 진압 이유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들이닥친 전경을 막은 행위 , 정당하다고 이야기했지요 . 정당하니까요 . 저를 담당한 경찰관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조사를 마쳤는데 , 좀 더 잡아넣기 수월하도록 빡빡하게 굴지 않았던 게 못마땅했나 봅니다 . 조사 태도가 불량했다니요 . 피의자는 자신을 검거하려던 서울지방경찰청 ○○ 기동대 박 ○○ 순경을 밀쳐 왼쪽 무릎 십자 인대 부상을 입히는 등 죄질 또한 매우 불량합니다 . → 전경을 밀어서 넘어뜨린 적도 없거니와 저를 연행해 간 경찰관과는 조금의 마찰도 없었습니다 . 어째서 단 한 번의 대질도 없이 경찰관의 증언만 증거 삼아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 피의자의 조사태도 및 현장에서의 태도를 종합하면 피의자는 방임 ( 불구속 ) 시 또 다른 집회현장에 참가하여 재범의 우려가 높아 피의자 구속하고자 합니다 . →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으면서 검찰은 제 멋대로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 속된 말로 똥줄 탄다고 하지요 . 딱 그 꼴입니다 .   덕분에 영장실질심사라는 걸 하러 수갑 차고 포승줄에도 묶인 채 법원에 가게 되었지요 . 기분 더럽게 하는 데 수갑과 포승줄만 한 게 없었습니다 . 그러면서도 당당하기에 고개 처 들고 , 가슴 펴고 다니겐 되더군요 . 과거 민주화 투쟁을 하던 인사들이 카메라 렌즈에 묶인 손 들어 보이며 웃던 기분이 그런 거였나 싶기도 하고요 . 저희를 법원으로 데리고 온 강남서 경찰들이 공안검사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어 댑니다 . 보통 영장실질심사에는 판사와 변호인만 참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 공안 사건인 경우는 공안검사가 온답니다 .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더군요 . 졸지에 저는 공안사범이 된 것이죠 . 황당하면서도 웃긴 건 법원까지 온 검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겁니다 . 제 변호인들 (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 변호사들 ) 과 저만 이야기를 하고 검사는 제출한 보고서로 갈음한답니다 . 묻고 싶더군요 . 젊고 멀쩡하게 생긴 여성 검사가 어쩌다 검찰 내부에서도 충견 중의 충견으로 일컬어지는 공안통으로 가셨는지 . 법원까지 와 놓고서는 마치 본인이 피의자인거 마냥 책상만 응시하고 앉아 있는지 . 심사 마지막에 판사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더군요 .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 신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장례식장이었고 , 민감한 사안이기에 유족 측과 노조 측이 대동한 자리에서 신중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했고 , 그 사실을 일반 노조원들과 조문객들에게 정확히 밝혀야 했고 , 그래도 안 된다면 이후 전경들을 데리고 와 진압작전을 펴는 게 순서임에도 불구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이들을 다짜고짜 진압한 경찰들의 행위야 말로 아주 불손하고 무례하다고 .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 바보처럼 고개 떨구고 있는 검사를 보니 더요 . 본인도 환장했겠지요 . 이 말도 안 되는 사안을 가지고 법원까지 와서 한바탕 쇼를 해야 하니 .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와 심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 오후 10 시까지는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11 시가 넘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자 억울하게 구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11 시 반쯤 되었을까 , 심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 끝까지 잡혀 있던 3 명 중 절 포함한 2 명은 석방되었으나 1 명은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말았습니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 수석부위원장님이셨지요 .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힘겹게 투쟁해 오시던 그 형님을 끝끝내 개만도 못한 검찰이 물고 늘어지더군요 . 두고 나와야 하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생전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지요 . 나온 뒤 위영일 지회장님과 김선영 영등포분회장님께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   이런 저런 글들과 증언을 통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공권력의 속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아는 것과 깨닫는 건 천양지차지요 . 이번 경험으로 공권력의 속성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삼성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나 , 무소불위의 삼성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자 고인의 생부 앞에서 무릎 꿇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노조원들 . 그런 그들에게 입장을 바꾼 생부의 신고만으로 순찰차가 아닌 전경 3 개 중대를 보낸 민중의 썩은 지팡이 경찰 . 진압 목적과 경고방송을 제대로 듣지도 못한 노조원들을 강제 진압한 뒤 ‘ 장례식 방해 ’ 와 ‘ 특수공무집행방해 ’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견 ( 犬 ) 찰 . 거대권력에게는 너무도 온순하지만 ,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너무도 과감한 그들 . 그들의 진면목을 이번 경험으로 절절히 알게 되었습니다 . 얼간이 같은 공권력의 엄포에 순간적으로 쫄 수는 있을 겁니다 . 하지만 그건 순간일 뿐이죠 . 복잡한 일에 얽히기 귀찮아서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저부터 전의가 불타오릅니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이야 더 말 해 무엇 할까요 . 노조는 죽어도 안 된다던 어느 꼰대의 유지 , 우리 동지들이 사뿐히 즈려 밟아 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