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 미니시리즈<지관 田씨> 5화(마지막회) 아비는 괴팍한 버럭쟁이였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고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즐거워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개인의 유쾌한 성격이 공익을 창출해 내지는 않는 다는 것은 ‘큰오빠 -전으리- 가카’의 사례를 통해 명확히 밝혀졌듯이, 아비의 유쾌함 또한 가정의 안녕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1997년, 시대의 벽은 가파르게 무너져 내렸다. IMF이후 관세 완화로 저렴한 수입 축산물들이 밀려들어왔고 소 값은 널을 뛰었다. 장례문화도 급변하면서 아비를 찾는 사람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시간은 더 이상 강인한 육체를 허락하지 않았고, 자식들도 더 이상 아비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를 모두 팔아 치우고 외양간은 텅 비었다. 지관을 찾는 사람도 없어 집 밖으로 나서는 날이 줄어들고 집안에서 잔소리가 늘어났다. 가족들 누구도 이런 아비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아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큰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종적을 감췄다. 두 딸은 결혼해 1년에 두 세 번 집을 찾을 뿐이었고, 아내와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무시로 일관했다. 당시 나의 태도를 돌아켜 보았을 때 ‘무시’라는 말은 매우 허약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몸에 흐르는 아비의 유전자를 털 끗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지워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남성’을 포기하고서라도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마초적 성향을 지우고 싶어 동성애와 성전환 수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었고,(이제는 확실히 안다. 본능을 이겨낼 이성은 없다.)고기를 좋아하는 아비의 식성을 닮은 나의 입맛을 바꿔보려고 채식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이 또한 안다. 본능을 이겨낼 이성은 없다. 쩝 ;;;) 아비는 급격하게 늙수그레해져만 갔다. 아비의 호방한 성격을 칭송하던 마을 사람들과 친인척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 마다 더욱 기운을 잃어 가는가 싶더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말수가 없어지고 눈빛에 총기가 사라진 예순 여덟의 아비를 마주한 내 나이는 스물 여덟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비의 알몸을 보았다.  내 기억에 의하면 가족들이 모여 여행을 떠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두 누나와 매형, 조카들, 엄마, 아비가 함께 온천여행을 갔을 때였다. 등을 내미는 노인네도 어색해 했고 나 또한 그 등이 낯설어 아무 말 없이 등을 문지르자 몇 분 지나지 않아 낮은 목소리로 그만 하라고 말 했다. 늙고 병들어 황야로 쫓겨 난 마른 짐승처럼 보였다. 그 알몸을 보고 나서야 무언가 내려놓아지는 것 같았다. 연민도 아니었고 측은지심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 아비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 낸 한 명의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으로 아비를 바라보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집을 찾아가 함께 병원에 가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해 먹였다. 당시 아비의 병수발을 들던 엄마도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두 사람 모두를 돌보아야만 했었다. 때때로 음식을 타박하고 엄마를 몰아세우고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입에 데지 않는 음식은 밥상에서 치우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이듬해 초봄. 아비는 차도를 보여 다시 말수도 늘고 집 밖으로 나와 산책도 한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은 지 이틀 만에 사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큰아버지 농약 드시고 군산 의료원 응급실에 계신다.” 한동안 죄책감에 사로잡혀 지내기도 했었지만, 그 죄책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서 느껴지는 학습된 죄책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러한 죄책감 따위 집어치우기로 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중환자실로 면회를 가고 엄마의 수발을 들었다. 농사일을 하고 마을에서 벌어진 노가다판에 나가 짬짬이 돈을 벌기도 했다. 그 사이 쓰러졌던 엄마는 다시 기력을 되찾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진료를 받은 아비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의사는 손을 들고 집으로 모셔가라고 말했다. 산소 호흡기를 떼면 사흘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누나들과 친인척에게 연락하고 아비를 집으로 모셔왔다. 집안은 적막했다. 엄마는 밭에 나가 저녁꺼리를 뜯고 있었는지 나와 아비만 방에 남아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아비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임종을 맞이했다. 향년 육십 구세였다. 배넷 똥을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히며 아비의 알몸을 다시 보았을 때 목욕탕에서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들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이 사람의 자식이 맞구나.’ 아비의 자식임을 온전하게 인정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간혹 내 모습에서 아비의 모습이 튀어나올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이 나 임을 하나하나 곱씹어 삼키며 나의 바닥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삶은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꿈에 아비가 종종 나타났었는데, 언제나 과묵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노인네가 여행을 시작하기 며칠 전에 나타난 꿈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워했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노인네. 생전에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게로구만!! ㅋㅋㅋ’ ---------- 몸이 좋지 않아 어젯밤 일찍 잠이 들더니 새벽 4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몸도 가볍고 열도 내렸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떡갈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식량을 축냈다. ㅎㅎ 우선 뜨끈하게 쑥차를 끓여 마시고, 나아군형이 준 달걀을 삶아 먹고, 뱀과 더덕을 구워 먹고, 밤쌀을 씹어 먹고, 참외를 깨물어 먹고, 누룽지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마를 깎아 먹었다. 아팠던 몸이 나으려는지 자꾸 배가 고프다. 뭐 먹을 것 없나....;;; 감자꽃 감자꽃이 피었다는 것은 감자의 밑이 들어간다는 말쌈! 지금 배가 무척 고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