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아름다운, 아직은 정장 차림이 어색할 정도로 젊은 그녀가, 곱게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그녀가, 급히 뛰다 숨이차 걷다를 반복 한다. 방금 머리 손질을 마친듯 그녀의 머리는 세련된 컬을 유지하며 등 뒤에 공이 튕기듯 부딛힌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 멈춰 숨을 고른다. 스마트 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고, 혹시 머리가 엉키지는 않았나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고, 가방에 넣으며 숨을 크게 한번 더 들이마시고 내쉰다. 그녀의 얼굴. 어떻게 그런 밝고 행복한 미소를 아름답게 지을수 있을까.   그는 머리를 감지도 않았고, 글자인지 무늬인지 많이 지워져 흔적만 남은 추리닝과 샌들 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미소를, 그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피우고 있던 담배를, 그녀를 향해 손가락으로 튕겨 날린다. 새로 산듯한 그녀의 옷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안전하게 바닥에 떨어진 담배는 꺼지지 못한 꽁초가 되어 연기를 내뱉기만 하다 곧 숨이 막힌듯 멈춘다.   그녀의 미소는 여전하다. 그녀의 눈은 애정으로 가득하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녀에게서 가벼우면서 밝고 기분좋은 향이 나는 것 같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미안한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그녀는 그에게 머뭇거림없이 바로 앞으로 다가가 그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미안하다고, 늦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여전히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애인을 기다리게한 미안함이 그녀의 눈과 코, 귀와 입술에 온전히 남아 있다. 담배 냄새가 진하게 남은 그의 얼굴은 무뚝뚝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가득 담아 그녀의 미안함은 무시하고,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이 시작되자, 더욱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 팔을 잡고, 그의 옆에 붙어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내어 손가락 하나하나 깍지를 끼고,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온 몸으로, 마음으로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그에게, 그는 그녀에게 특별한 사이다. 이 둘 사이에 일반적인 예의가, 모두가 이해하는 상식은 없다. 이들은 사랑하는 동시에 그들만의 것들을 만들어 낸다. 그 둘은, 그 둘 만의 언어를, 순식간에 탄생한 새로운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그 둘만의 원칙을, 직전에 만들어진 새로운 원칙을 틀림없이 지킨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 그 둘은 모든것이 가능하다. 그 둘 사이에 서로는 서로에게 전지전능하다. 이런 특별한 것. 오직 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 사랑. 사랑은 이런면에서 약간 무지막지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다. 물론 그 둘을 바라보는 난 아름다움을 알 수가 없다. 왜 저리 아름다운 여자가 저런 막장같은 놈 옆에 있는걸까 하며 그들이 사랑한다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남자이고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여자를 이쁘게 표현했다. 레즈비언 이었더라도 그랬을 것이고.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혹은 게이였다면 남자를 멋지게 썼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 이지 않을까? 확정적으로 말하기 싫지만. 최소한 나에게 사랑은 이런 것이다. 둘 사이에 ‘특별한 것’.   이런 특별한 것을 ‘그 둘’중 하나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려고만 해도, 순식간에 그 ‘특별한’ 것은 기억에서나 겨우 남을, 순식간에 현실이라는 공기로 꽉 들어찰 ‘진공상태 였던’것이 될 것이다. 그런게 있던 사실도 거짓이 되는, 확정되었다 믿고 있던 ‘그 둘’ 사이 사랑의 과거를, 그 둘 사이의 우주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특별한 것과 일반적인 것. 좋고 나쁨은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다만 이 두가지는 관계 유지에 대한 것이다. 특별한 또는 일반적인 관계인가.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   한 달전에, 아니 한 달하고 한 주 전부터 말하고 싶던 것이 있었지만 글로 어찌 옮겨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수많은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가 얼마나 무참하고, 무자비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겁나고, 화나고, 무기력해지고, 다시 화가나고, 겁도 나고, 이 와중에 확실한건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 뿐이었다.   이게 거의 열번째 글이다. 끝까지 쓴 것은 없다. 이 글은 마칠수 있을까.  잘 안되는 것,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 난 포기가 빠르다. 겁도 많다. 포기가 두려워 선택 하지 않고 시간 버리는 것, 이제는 충분히 익숙하다. 하지만, 이 글은 포기할 수 없다. 마지막 문장까지 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 알고 있지만 참을 수 없어 또 시작한다.   ..   세월호가 침몰했다...   뉴스를 통해 첫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읽고, 그리고 듣고, 그리고 봤다. 지금도 여진히 읽고, 듣고, 본다.   사고 직후 오보는 수많은 채널을 통해 속보라며 퍼저나갔다. 오보인 속보를 그저 속보로만 알고 있었던 사고 초기에는, 이 친구들, 그 사람들,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도 멀지 않은 바다이니 얼른 나와서 좀 쉬고, 또 가면 되겠지 했다. 대부분이 학생들이라는데. 어린 나이에 즐거워야할 수학여행길에 사고라니. 안타까웠다. 난 그냥. 그정도였다. 혹시라도 한, 두명이라도 안좋은 일이 생기면, 아 그 아이 어쩌나. 그, 그녀, 아이,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단 한명만이라도 구조되지 못해 배 안에서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그러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곧 이전의 속보가 거짓이라는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보는 다시 다음 속보에 의해 거짓이 되었다. 감정을 마음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걱정과 슬픔, 참담함과 절망, 분노와 저주를 마음 어디에 들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사랑하는 이가 말 한마디 연락없이 떠났을 때, 그 때의 마음이 이랬던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어쩔줄 모르고, 뭐라도 하려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상태.  아무리 기다려도 구조자는 없었다. 실종자 수가 사망자로 확정되는 것만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슬퍼 글을 쓰다 그 슬픔이 터지고 나서야 분노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황스러워 쓰기를 멈추었다. 화가 나서 다시 글을 쓰다 목이 아플지경이 된 후에야 그만 두었다. 필요하면 분노만 하다 말겠지.  분노는 글로만 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허둥지둥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상상이 아닌 우리 현실에서..  그래.  언제나 현실은 그저 현실일 뿐이다.   현재는 순식간에 지나가 과거가 되고, 저 멀리 보이지도 않던 미래는 금세 현재가 된다. 내가 현재 선택을 하면 이 선택은 과거가 되어 확정되고, 그에 따라서 내 미래는 하나하나 확정되어 간다. 고위험 선택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그래서 과거를 읽어 해독하고, 공부하고 해석해서, 경험하지 말았어야 할 과거를 지닌 우리이기에 이를 미래에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처절하게 노력하며 이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게 불만인 사람들은, 과거는 읽으나 어리석게 해독하고, 공부는 하나 오만하게 판단한다. 그렇게 미래는 엉망진창이 되고, 곧 현실이 될 미래는 에라 모르겠고 그저 현재를 잡으려고만 한다. 아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잡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우리가 ‘그들’을 원했던 것은 아닌가. 우리에겐 땅값과 돈을, 당신에겐 권력을. 그렇게 살고 있는건 아닌가. 많은 돈과, 강력한 권력. 이 둘을 가지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세상을 가질지 모른다고. 낭낭하고 설득력있는 조용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악마가 속살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일단 가져라. 가졌다면 원하는대로 마음껏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라.  자. 이제 우리 현실은?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   연예인이 팬들을 대할때 모두 사랑한다고 말한다.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연예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지만 한 연예인이 각 개인인 팬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연예인도 팬들을 일반적으로 대해야한다. 그러면서 팬과 연예인의 관계를 서로 특별하고 일반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것이다. 누구를 더 특별하게 대한다면, 그 즉시 누군가는 소외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국가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일반적인 국가의 의무다. 사람들이 모여 국가를 만들고 이름을 부여해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사람들을 국민이라고 부른다. 국가를 만든 이는 한 개인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일반적이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다면, 누구라도 여기에 특별한-개인적인 이익, 권력이나 그 무엇으로 일반적으로 보려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그 상대가 누구든, 그 상대가 다른 국가라라 하더라도,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 국가가 사람을 만들어내 그들에게 이름을 주어 국민이라 부르며 특별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국가는 신이 아니다. 국가는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 국가에 이름을 불러주기에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고, 국민과 국가는 서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 간절해야 하는가. 국민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각 개인은 국가에게 동등하게 특별한 존재이며, 따라서 국가는 매우 일반적으로, 무조건 국민을 보호하고, 위험에 빠졌다면 구출해야하는 것이다.     개인이 무릎을 꿇어 간절히 내 아이 살려달라고 해야하는가.  지금  국가는, 대한민국은 특별한 국민과 일반적인 국민을 구별하여, 특별한 국민에게 일반적인 국가의 당연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반적인 국민이 그것을 요구하면 특별한 국가의 공권력을 행하는 것 같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걸까.   국가가 특별한 국민을 일반적인 국가 서비스로 섬기고, 일반적인 국민을 특별한 국가 권력으로 대한다면,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망가졌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경험이 있는가. 어떤 과거가 있는가. 과거가 보기 싫다면 지금 시위현장에 가보라. 국가가 나를,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두 눈으로 한번 보라. 실시간 뉴스나 트위터 글이나 사진으로 어느정도 간접경험은 되겠지만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본다면, 과연 현재 대한민국과 국민의 관계가 특별한 것인지, 일반적인 것인지,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위현장에서 100미터만 떨어져도 서울 시내는 평온하다.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책을 구경하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평화롭다. 국가는 국민과의 관계가 사라지는걸 원하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 존재의 이유이니까.  현재 대한민국은 일반적인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국민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한다. 100미터 안의 ‘그런’ 국민의 수를 최소화 한 후,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여 안정감을 주려한다. 두렵기 때문에.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국가가 우리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했는지 생각해 보자. 상상해보자. 국가가 일반적이고 당연한 의무를 위한 권력을 특별한 이들에게만 사용했다면, 나머지는 도대체 어디에 쌓여있는 것인가. 그런 권력 재고가 없다면 그 많은, 어마어마한 그것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였다는 것인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렵다 해도 그것을 미래에는 있다고 희망하며 현재 잘 선택해서, 좋은 과거와 좋은 경험을 만들어 내는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과거를 좀 곧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과거가 많이 꼬여있다. 우리가 여기서 또 꼬아버리면 우리보다 어린,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희생되지 않았는가.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