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 미니시리즈<지관 田씨> - 3 화 10여 년간 전국을 돌며 군부대 경비를 서던 아비는 1977년경 집과 가까운 군부대로 발령을 받았다. 이 부대는 군산비행장 레이더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연병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1km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를 키우는 것이었다. 3교대 근무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그때까지도 소는 큰돈이 되는데다, 밭농사, 논농사와는 다른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노동이다보니 가오(?)가 서기도 했을 것이다. 집 아래 공터에 보루꾸와 스레트지붕으로 얼기설기 외양간을 짓고 소 다섯 마리를 넣어 키우기 시작했다. 산과 들, 개천에서 풀을 뜯어다 먹이며 소를 키웠고, 경비일도 계속해 나갔다. 경비근무라는 것이 몸을 사용하는 고된 노동이 아니다보니 경비를 서는 시간에 풍수지리를 익히고 역술을 공부했다. 소는 무탈하게 자랐고 다 큰 소를 팔아 송아지를 열 마리로 늘리며 본격적으로 소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79년경이었다. 그 무렵부터 지관을 시작했고 6년 후에 조금은 번듯한 집으로 이사를 갔으니 가세가 어느정도 피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일 것이다. 소도 잘 자랐지만 땅을 봐달라는 문의도 점점 늘어나 본격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을 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엄마는 어떤 짐승이건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큰돈을 벌어주는 소라지만 밥을 먹이고 똥을 치우는 일이 무서웠다고 한다. 그러니 아비가 집을 비울 때 우사 관리가 잘 되었을 리 없었다. 내 기억에, 지관 일을 보고 돌아오는 날이면 날마다 집구석은 한 번씩 뒤집어 졌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밥상이 뒤집어 졌으며, 이틀에 한 번꼴로 잠을 설쳐야 했다. 내가 일곱, 여덟 살이 되었을 때부터 집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비가 소리를 지르면 몇 분 동안은 귀가 멍한 상태로 벌벌떨고 있어야 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가족들은 모두 기가 눌려 찍소리도 내지 못했고, 아비는 가족들의 그러한 태도가 당연하다는 듯 남인수의 노래와 적벽가를 큰 소리로 불렀었다.  집안은 적막했고 외양간에서 들려오는 이비의 노랫소리는 스산하게 울려퍼졌다. 코끼리의 조련 방법을 처음 들었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린 코끼리를 튼튼한 말뚝에 메어두고 밥도 주지 않고 물도 주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나면, 처음에는 날뛰다가도 그 말뚝에 지고 만다. 이후 말뚝을 뽑고 달아날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나도 그 말뚝은 뽑지 못한다고 여기고 작은 말뚝에 메어 지내게 된다는 이야기를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 들었을 때, 내 키는 이미 170cm에 가까워 있었다. --------- 아침에 일어났더니 몸이 욱신거리며 몸살기운이 돌았다. 마가 크고 좋아서 없던 힘도 생겨나는 것 같더니 무리를 하긴 했나보다. 감기 기운이 돈다 싶으면 칡차가 제격. 절구에 마를 찧어 죽을 끓여 먹고 칡차를 진하게 끓여 마셨다. 따뜻한 것을 먹고 텐트에 조금 더 누워 있었더니 몸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어지간하면 마를 그만 캐려고 했지만 뻗어 올라온 줄기가 무척 굵어 그것만 캐기로 마음먹었다. 마를 캐려고 돌을 옮기는데 커다란 지네가 한 마리 나오더니 돌 하나를 또 옮기자 이번엔 뱀이 나왔다 어럽쇼!! 지네는 유리병에 담고 뱀은 껍질을 벗겨 말렸다. 다시 돌을 옮기는데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또 나와 그 놈도 병에 담았다. 일마삼득?? ㅋㅋㅋ 아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뱀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가 생각난다. 소를 키우려면 짚을 쌓아 두고 먹여야한다. 가을에 추수를 끝내고 거둬들인 짚을 마당 옆에 쌓아두면 뱀이 겨울을 나기에 아주 좋은 보금자리가 된다. 쌓아 놓은 짚눌을 소를 먹이기 위해 허물다 보면 종종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데, 아비는 그 뱀을 손으로 휘어잡아 껍질을 벗기고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기생충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일 테지만 탈이 난 경우는 없었으니 그렇게 먹어도 되는 것으로 알고 먹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그러니까 여섯, 일곱 살에, 여전히 꿈틀거리는 뱀을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뱀, 개구리, 지네, 쥐 등을 잡아먹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비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었다. 가정교육. 이래서! 중요한가??? ㅋㅋㅋㅋ 마 한 뿌리를 캐고 났더니 풀렸던 몸이 다시 쑤시는 것 같아 그만 두고 짐을 정리했다. 계곡으로 들어가 식수를 떠오고 저수지에서 설거지를 해 널어 말렸다. 날은 더웠지만 몸이 좋지 않아 수영은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더 머물러도 좋았을 테지만 잡힌 약속이 있었다. 육두씨리즈의 한 획을 긋고 있는 나아군의 초대를 받은 것이다. 나아군 집 뒤에 산도 있고, 호수도 있고, 뱀도 있고, 물고기도 있다나???? ㅋㅋㅋㅋ 그래서 짐을 싸고 느릿느릿 충남 공주로 향했다. 국도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데 숲과 들은 이미 여름으로 접어들어 있었다. 길가에 핀 꽃이 좋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데 꽃밭 아래 바알간 딸기가 열려 있었다.  사람 손이 탄 길가의 정원으로 보였지만 익은 딸기가 썩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딸기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소쿠리를 꺼내 딸기를 따 담았더니 재법 양이 많았다. 달기만한 하우스 딸기에 비해 새콤달콤하고 향기도 무척 좋았다. ‘본디 딸기는 이맘때 나는 것인데, 이제는 시장에서 노지딸기 구경하기가 더 어려우니...’ 오랜만에 맛 본 노지딸기에 감기기운도 물러나는 것 같았다. 딸기를 먹으며 공주로 오는 길에 삽도 한 자루 사고, 치약도 샀다. 일찌감치 호숫가에 도착해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은 다시 가벼워졌다.  칡차와 딸기가 약이 된 모양이다. 이곳의 산은 깊지만 주위에 인가가 크게 형성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곳으로 보여 오래 머물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아군과 이곳에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충남 영동군으로 이동하겠다. 붓꽃 어제 올렸던 창포와 비슷한 모양의 붓꽃을 발견했다. 창포와 붓꽃 모두 노랑, 보라, 흰색의 꽃을 피워 색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렵고,  꽃의 모양과 크기, 잎의 길이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교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언제나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붓꽃과 창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