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 미니시리즈 <지관 田씨>-1화 아비는 소를 키우고 지관을 겸하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지관은 묫자리와 집터를 봐주는, 풍수지리와 역술을 익혀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역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작명을 해주거나 궁합, 사주, 팔자를 봐주는 일도 겸했고, 망자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시신을 염하거나, 오래된 묘를 파내 썩을 시신을 수습하고 이장하는 일도 아비의 직업이었다. 지관이란 직업은 할아버지에 이어 2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것이었는데, 이 직업은 기본적으로 방랑벽을 품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전국의 산과 들을 돌며 망자의 기운에 맞는 묫자리를 찾는 것이 일이다 보니 산과 들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이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아비보다 할아버지의 방랑벽이 더욱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예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아무 이유 없이 두루마기를 다리라 일렀고 다린 두루마기를 입고 새벽같이 집을 나가 한 달 만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말도 몇 마디 안했고 과묵한데다 성질마저 괴팍했지만, 마을에 나가 사람들과 둘러앉으면 좌중을 사로잡는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딜 다녀왔느냐 묻지도 못하고 있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 만주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만주에 다녀오고 싶었다고.... 할아버지는 잡학에 능했고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이야기꺼리가 마르지 않았는데, 말주변도 여간 아니어서 당시 마을 사람들의 라디오이자 TV역할을 했었다며,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칭송했었다. 반면, 경제사정에는 눈이 어두워 인근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집안이 할아버지 대에 들어서 가장 가난한 집으로 주저 앉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이가 갈린다”는 표현으로 일갈했었다. 아비는 할아버지에게 방랑벽과 말재주, 괴팍함, 잡학다식에 대한 탐구, 나태함을 물려받았고, 할머니에게는 유쾌함을 물려받아 괴팍하면서 유쾌한, 즉, 목소리의 레벨을 조절하지 않는 시끄러운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내 아비의 방랑벽과 말재주, 잡학에 대한 필사의 탐구정신(?), 욱하는 성질을 물려 받았고, 엄마에게는 고집스러움과 유순함을 물려받아, 유순하면서 고집스러운데다 종종 욱하는, 희말라야 염소 뺨치는 짐승으로 자라났다. (게다가 나는 양띠다. ;;;) 아참. 하나 더 있다. 할아버지는 인근 마을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확독을 들어 어깨 뒤로 넘기는, 장사 대열에 합류했고,  아빠는 죽는 날까지 ‘황우장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았다.  그 힘을 물려받은 사람은 네 형제 중에 나뿐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팔씨름과 씨름에서 져본 일이 없을 만큼 힘이 쎈데다, 잡기에 능하다보니 선생들의 밥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씨밤. 선생들이 날 참 이뻐했는데... 일 시켜서 안 돼는 것이 있었어야 말이지... 이뻐할 만 했지.... 쩝;;; --------------- 짧게 갈라 했는데 산에 다녀오면서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100년 동안의 고독>을 능가하는 가족사가 펼쳐지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줄이고 줄여 앞으로 5일간 아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 아침에 일어나보니 물안개가 살포시 올라와 있었다. 어제 뽑아 씻어 두었던 둥굴레의 잔뿌리를 떼어내고 한소쿰 쪄서 볕에 널어 말렸다. 해가 쨍하게 들어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꺼내 널어 말리고 참외와 떡을 챙겨 산으로 들어갔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좌우 언덕을 뒤져 더덕을 캐고, 우산나물을 뜯는데 사람손으로 쌓은 석축이 눈에 띄었다.  무엇인가 하고 석축 위로 올라서 보니 옛길이었다. 길은 길이지만 나무가 자라나고 바위가 굴러내려 길을 막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적이 끊긴지 오랜 것으로 보였다. 처음 생각에는 깊은 산에 사람이 살다가 인적이 끊긴 것으로 여겼지만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니 재를 넘는 고갯길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한 두 사람의 이동을 위해 이만한 석축을 쌓고 길을 냈을 리는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이 길은 호수 아래 마을부터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의 매봉을 향해 있는데 인근 마을에서 주천면 소재지로 이동하기에 가장 가까운 길은 산을 넘는 것이었을테고, 55번 국도가 생겨나기 전에는 마을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동상면 사람들까지도 이 길을 이용해 주천면에 다다랐을 것이었다. 길 중간중간 커다란 나무가 자라있고 조릿대가 빽빽이 들어서 길이 끊겼나 싶다가도 그 지점을 지나면 계속해서 길이 이어졌다. 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중간에 작은 폭포를 만났는데 그 아래로는 사람들이 쉬었다 갔을만한 넓은 공터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물이 흐르고 양지바른 곳이라 공터 주변과 바위 사이사이에 비비추가 군락을 이뤄 자라나고 있었다. 비비추 연하게 자란 비비추 한 다발을 뜯고, 옛사람들이 그랬을 것처럼 폭포수로 목을 축인 뒤 공터에 앉아 떡과 참외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따라 산을 올랐는데 어느 지점에선가 길이 뚝 끊기고 말았다.    조릿대 숲 뒤로 더 이상 길은 없었다.  아마도 언덕의 가장 가파른 부분이었을 텐데 산이 무너져 내려 석축을 쌓았던 흔적만 남았을 뿐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길의 끝을 보지 못해 아쉬워 몇 십 미터를 더 올라 보았지만 얼기설기 흘러내린 바위도 사납고 언덕도 가팔라 포기하고 길을 돌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내려가 보니 계곡물이 모여 앉은 작은 소가 눈에 띄었다.  산을 오르느라 땀도 많이 나고 더워 주저 없이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일요일 오후부터 오늘까지 3일간 이곳에서 생활했는데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훌렁훌렁 옷을 벗고 계곡물로 뛰어드는 것이 꺼려지지 않아 좋았다. 몸에 열이 올라있는 상태라 우선 물에 들어갔을 때는 시원하고 좋았지만 계곡물이 엄청나게 차가워 몇 분 만에 물 밖으로 튀어나와 해가 드는 바위 위로 올라 몸을 말렸다.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몸의 물기를 말릴 때까지 발가벗을 채로 기다리는 그 시간이 대단히 이색적이면서도 편안해서 혼자서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겨울에 4개월 동안 숨어 지낼 곳으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체의 통신이 두절되는 이곳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었다. 고슬고슬 마른 몸 위에 옷을 입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뱀 2 마리를 잡았다. 아침에 작대기를 하나 깎아서 짚고 산에 올라갔더니 배암 잡는데는 그만이더군... 쩝 ㅎㅎ 큰 것은 구렁이처럼 보이는데 작은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텐트로 돌아와 뱀의 머리와 꼬리는 잘라 버리고 껍질을 벗겨 말려두었다. 내일은 뱀을 구워 먹으리랏. 흐흐흐흐흐흐흐흐 비비추는 데쳐 바락바락 문질러 아릿한 독성을 제거하고 볕에 널어 말리고, 우산나물은 데치고 헹궈 물에 담가 쓴물을 빼냈다.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헹궈 볕에 널어 말리면 묵은 나물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른 저녁으로 어제와 같은 떡쌈을 해 먹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뚝방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참마순 40여개가 모여있는 군락지를 발견했다. 참마 40뿌리면 하루종일 캐도 못다 캘 양이다. 내일은 산에 오르지 않고 참마를 캐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이곳에 온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쌓여가는 먹거리가 푸짐하다.  앞으로 먹을 것은 점점 더 많아질 테고, 장마가 올 때까지 부지런히 식량을 확보해 두면 여유롭게 여름을 마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해지는 숲의 푸른 빛이 근사했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달지... 천남성 알뿌리가 귀한 약재로 쓰인다지만 독이 있는 식물이다.  꽃도 사뜩한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자주 눈에 띄는 놈은 아니어서 올린다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음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