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작년 10월, 형은 신부를 맞으러 베트남에 다녀왔다. 그에 앞서 나를 먼저 장가보내려는 어미의 책략이 있었으나 나의 “개지랄”에 치를 떨며 포기하더니 “형이라도 장가보내야겠다.”는 말을 추석 무렵에 꺼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은 베트남에 다녀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형수가 한국 땅을 밟았다. 맑은 눈빛만큼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여러 가지 걱정들이 머리와 가슴에서 치고 올라왔지만 단단히 여며두었다. 결혼식 전날 시골집에 형제자매들이 모였다. 두 자매와 엄마, 그리고 ‘큰 애기’ㅎ 네 사람이 예쁘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찍은 사진도 좋지만, 편안한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스무 살도 넘게 차이나는 올케가 동생이 아니라 딸처럼 여겨지기도 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부디 이 땅에서 가슴 아픈 일 없이, 맑은 눈빛 잃지 않고 살아 내시길... 형의 결혼식이 끝나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떡과 참외 몇 개를 담은 종이봉투를 손에 들려 주셨다. 여전히 이해 못할 자식의 이해 못할 여행이지만 “지가 좋다니”나무라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전주로 돌아와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잤다. 빨래를 하고 집을 치우고 새로 짐을 쌌다. 두꺼운 침낭 대신 얇은 솜이불을 챙기고, 두꺼운 점퍼는 빨아 옷장에 넣고 얇은 셔츠와 티셔츠들을 챙겼다. 아이스박스가 아쉬울 때가 많지만 활용도에 비해 너무 커다란 짐이어서 빼고 그 자리에 소쿠리 하나와 책 몇 권을 더 챙겨 넣었다. 두꺼운 등산화는 슬리퍼로 바꿔 넣었다. 먹을 것도 챙겼다. 그녀가 화개장터에서 사준 밤쌀(바짝 말린 밤의 알맹이를 ‘밤쌀’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한 봉지와 알밤 한 되, 엄마가 싸준 떡과 참외를 차에 실었다. 캐둔 생마는 전주에 들렀을 때 만난 인쇄소 사람들에게 모두 털어 주었고, 말린 마와 쑥차는 그녀에게 모두 들려 보내 지금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녀와 엄마가 준 것 뿐이지만, 이제는 산에 들어가 몇 시간 발품만 팔면 얼마든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시기이므로 그녀와 엄마가 싸준 것들은 비상식량으로 잘 간직해 두겠다. 짐을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전주에서 북동쪽으로 진안, 무주, 영동을 거쳐 충남, 충북, 강원 내륙을 지나 동해안에 이르는 2개월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를 진안군 운일암 반일암 일대의 계곡으로 결정하고 이동하던 중 주변에 민가가 없고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대불저수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수지의 구조가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어 평소에는 건너편의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농번기를 맞아 배수를 시작하면서 저수지 둘레로 길이 생겨나 있었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숲이어서 먹을 것을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해 보였고, 저수지의 물도 깨끗해 가까운 개울을 찾으면 식수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이곳에서 며칠 묵어갈 생각으로 뚝방에 텐트를 쳤다. 밤과 떡을 수쿠리에 널어 말리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도 창가 손잡이에 걸어 두었다.  저수지 안에 작은 물고기들이 눈에 띄어 채집망을 던지는데 스윽. 통통한 꽃뱀 한 마리가 지나갔다. 돌을 집어 드는 사이 도망갔지만 이곳에 며칠 있으면 다시 만날 날이 있을 테지...ㅎㅎㅎㅎㅎ 추룹^-------------------------^ 해질 무렵 쑥차를 만들 쑥을 뜯는데 둥굴레가 여러 대 올라와 꽃을 피운 것을 발견했다.  둥굴레 내일 아침 해가 밝으면 둥굴레를 캐서 말려두고 산에 올라 보아야겠다. 이렇게 깊은 산에서 참마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더덕이나 천마를 찾을 가능성은 높다. 둥굴레 한 무더기가 발견되었으니 이 주변에서 더 많은 둥굴레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산이 깊긴 깊은 모양이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번쩍번쩍 눈에 불을 켠 산짐승들이 내 바로 옆에까지 와 있었다. 커다란 돌맹이를 찾아 숲으로 던지자 우당탕탕 도망치는 발소리가 한두 마리 산짐승은 아니었다. 도망치며 내는 소리로 봐서는 노루가 떼로 내려온 것 같았는데, 저수지로 물을 마시러 내려온 것일게다. 노루나 고라니는 돌맹이만 던져도 도망치지만 멧돼지면 어카지???? ;;; 무튼, 지금까지 2달간은 인가 주변과 바닷가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며 워밍업을 했다면 지금부터는 산짐승들과 레알하게 나뒹구는 산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동해안 까지는 온통 산뿐인데.... 흠...;;; 뭐. 어떻게 되겠지....;;;; 엉겅퀴꽃 저수지 뚝방 위에 엉겅퀴꽃이 많이도 피었다. 잎과 줄기는 보기만 해도 까칠한데 쎅쉬한 꽃 색깔 보소 ㅎㅎㅎ 보라색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음... 지미 핸드릭스??? ㅎㅎ 오늘은 사진 한장 더 어쩌다 물에 빠졌는지...  물에서 허우적대는 놈을 건져줬더니 사람 손 위에서 날개를 펴서 말리고 있다. 도약의 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