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15일 - 지붕 끄무륵한 하늘이 마뜩치는 않았지만 비가 올 것이란 예보는 없었으므로 날이 개려니 생각했다. 마를 넣어 밥을 짓고, 남은 떡을 마저 굽고, 남은 김치에 스팸을 넣어 지지고,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고 텐트에서 뒹굴거리는데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방울 오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텐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텐트 안에 누워 있었다. “지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 모양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덮어 놓았어도 지붕이 되고 벽이 되어서 비를 막아주니 아무런 걱정 없이 이렇게 뒹굴거릴 수 있잖아요. 저 얇은 것이 뭐라고 안심이 되는지... 반면에 저 얇은 것이 없으면 이 비가 얼마나 야속할런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텐트나 차 안에서 종종 해보던 생각이었다. 나 혼자일 때는 단순히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쳤는데, 그녀와 함께 텐트 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누워 있자니 이 빗속에서도 여유를 찾고 아늑할 수 있는 것은 지붕의 덕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지붕이 사람을 억눌러 숨도 못 쉬게 만들어버린 세상일지라도, 그 지붕을 지켜내려는 고군분투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나는 비를 맞더라도 너의 안락함을 위해 온 몸에 지붕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거북이들의 등껍질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오전 10시가 지날 때까지 비가 그치길 기다렸지만 오락가락 하는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아 잠깐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차로 옮기고 텐트를 걷어 접을 때는 비가 그쳤었지만 텐트를 걷고 나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지만 잡은 재첩과 다슬기의 양이 아쉬워 몇 개를 더 잡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섬진강 하류로 향했다. 섬진강 하류에 도착했을 때 불어난 강물 속에서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허리장화를 신고 써래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재첩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재첩을 잡고 있는 강 건너편에 차를 주차시키고 맨발로 강으로 들어가 모래를 뒤져 재첩을 잡았다. 사람들처럼 도구도 없고 허리장화도 없어서 깊은 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강가의 모래 안에도 제법 많은 재첩이 살고 있어서 손쉽게 두 사람이 먹을 만큼의 재첩과 다슬기를 잡을 수 있었다. 재첩을 잡고나자 오후 3 시가 넘어 있었다. 잡은 것들을 트렁크에 넣고 전주로 향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 삶을 이어갈 사람이므로 하루는 편하게 쉬었다 돌아가는 것이 옳을 것이었다. 그녀는 전주로 오는 길에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고, 기름진 중국음식이 먹고 싶어져서 탕수육과 군만두, 고량주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언젠가 그녀가 물었었다. “야만인 생활에 적응을 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이 되면 문명생활보다 야만인 생활이 더 편리하다고 느껴질까요?”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었다. 문명을 예찬하는 문명예찬론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더하기도 했었다. 아직까지는 예찬론을 펼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집안에 갖춰진 도구와 용품들, 단단한 벽과 창문,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의 편리함과 안락함이 온 몸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4월 초에 집에 왔을 때는 불안한 마음에 한시라도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녀와 함께 집에 돌아온 오늘은 그런 불안이 사라져버렸다. 며칠간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다 해도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녀와 함께 밥을 나누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겼다. 잡아온 재첩으로 국을 끓여 먹고 다슬기를 우려 수제비만두국을 끓여 먹었다.  개운하고 담백한 재첩국물도 맛있지만 국물맛은 잘 우려낸 다슬기국물이 최고. 바지락젓 국물로 간을 했고 수제비반죽은 삶을 마를 으깨 밀가루와 함께 반죽을 했다.  마를 넣었더니 쫄깃한 식감도 한층 좋아지고 구수한 맛도 더해졌다.  냉동실에 남아있던 물만두를 함께 넣었는데  다슬기 국물에 수제비만 어울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다슬기수제비만두국!  생치침채와 더불어 그녀를 위한 식탁 베스트음식으로 등극! 지금까지 찍어 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깔깔거렸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잤다. 옷을 벗고 뒹굴거리고 바람이 불면 이불을 덮었다. 그러다 그녀는 목요일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땡중이 만들어준 식초 한 병과 쑥차, 말려둔 마, 쌈장을 만들어 손에 들려보냈다. 문명을 예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이런 것들을 그녀의 손에 들려줄 때 부끄럽지 않고 뿌듯하기 때문이리라. 7월 즈음 동해안에 다다랐을 때 그녀와 함께 월출을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녀와 내가 공히 가장 보고 싶어 하는 풍경은 월출이다. 짙은 바다에 푸른빛으로 밀고 올라와 붉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여름바다에서 함께 마지 할 수 있기를... 그날까지 중부 내륙에서 야만인 생활을 이어가겠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했고 찔레꽃 무더기가 멀리서도 화사하게 눈길을 끈다. 게다가, 구례에는 메밀꽃도 피었다.